[심부전과 살아가기] 힘겹게 심장 이식을 받았지만...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 등록 2021-09-11 오전 8:28:55

    수정 2021-09-11 오전 8:28:55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식사를 조금만 해도 소화가 안되고, 심한 더부룩함을 느끼며 지낸 60세 김 모 씨는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심한 호흡곤란을 느꼈고, 다니던 병원에서 심장 이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본원을 방문했다.

김 모 씨는 남편과 사별 후,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열심히 살던 중 45세 경 유방암 진단을 받고, 이후 수술과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를 받고 완치 판정을 받았다.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일을 하던 중 점차 호흡곤란을 느낀 김 모 씨는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항암제에 의해 심부전이 심하게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심장은 커졌고, 좌심실과 우심실 기능이 모두 감소한 소견으로 심장 보호 약제를 사용하면서 증상은 다소 호전됐으나 이미 섬유화된 심장은 회복되지 못하고, 다시 점점 심한 호흡곤란이 생겼다.

게다가 우심실 부전이 동반돼 있어 장과 다리 부종이 함께 발생해 조금만 먹어도 소화가 안되는 증상이 함께 나타났다. 가뜩이나 호흡곤란이 있어 힘든데, 소화도 안되어 식사를 잘 하지 못하게 되니 환자는 점차 말라가기만 했고, 유방암을 겪었던 것도 서러운데 심부전도 발생했으니 우울증이 심해지기만 한다. 심장초음파를 보았을 때 이미 심장은 커질 만큼 커지고 양심실의 기능이 모두 감소한 상태로 이렇게 견디고 계신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승압제를 사용하면서 심장 이식을 대기했고, 대기하는 중간중간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식사를 거의 할 수 없어 체외 순환기(ECMO) 삽입을 여러 차례 고려했으나 승압제를 올리면, 조금 더 견디는 상황을 반복하면서 겨우겨우 심장 이식을 대기했다.

심장 이식은 혈액형, 나이, 응급도에 따라 대기 기간이 달라지는데, 가장 중요한 응급한 환자, 즉 중환자에게 먼저 이식을 하겠다는 원칙은 전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는 장기이식관리센터에서 응급도를 0~3으로 나누고 있고, 응급도 0이 가장 중증의 환자로 중환자실에서 에크모를 삽입한 환자, 기관 삽관을 한 심부전 환자 등이 이에 속하게 된다.

다음으로는 대기 기간, 오래 기다린 사람이 먼저 이식을 받게 되고, 나이와 혈액형 등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따라서 일률적으로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 승압제를 쓰면서 입원을 하고 있는 경우 혹은 인공 심장을 한 이후 외래에서 통원치료를 하면서 기다리게 되면 6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리게 되고, 중증도가 심한 경우에는 보통 2주에서 1개월의 대기 기간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말기 심부전 환자들은 언제든 상태가 나빠질 수 있어서 이식을 대기하는 중 사망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게 된다. 또한, 뇌사자의 심장을 이식받을 수밖에 없어 뇌사자의 가족들에게는 또다른 아픔이 될 수 있기에 뇌사자가 발생하길 바라는 마음 또한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 발전된 의학으로 말기 심부전 환자들에게 또 하나의 희망인 심장 이식이라는 기술이 있지만, 뇌사자의 심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특수성으로 단지 의료인의 기술과 정성뿐 아니라 어느 정도 운이나 인연이 따라야만 한다.

유방암을 앓고, 이후 말기 심부전의 상황에서 승압제로 견디던 환자는 겨우겨우 수개월을 견뎌 심장이식을 성공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 환자는 심장 이식 후 빠르게 회복해 정말 그토록 원했던 밥 한 공기를 거뜬히 비우고도 식사를 더 하고 싶어 할 정도로 식욕도 회복하고 소화도 잘 됐다. 또한 한 시간 이상을 걷거나 산에 올라도 전혀 숨차지 않아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이라 했다. 여러 병마와 싸우며 우울증이 심해 심장 이식을 기다리던 중 자주 눈물을 보이던 환자라 이식 후 밝게 웃는 모습이 정말 보기도 좋고, 큰 보람을 느꼈던 분이었다.

그런데 정말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인 것인지 내가 미국으로 연수를 간 이후 심장 이식 환자들의 소식을 묻고, 보호자분들과 연락을 할 때 너무나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김 모 씨는 심장 이식을 한 후, 2년 동안 너무나 잘 지내고,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는데,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가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렇게 힘든 과정들을 거쳐 이제 살만해지고, 하루하루를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셨을 텐데 정말 허망한 일이었다. 오늘도 심장 이식을 대기하는 환자들을 보고 있으면 내 환자들의 간절함, 뇌사자와 가족들의 안타까움이 교차하여 복잡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그렇지만 사람의 인생이 한순간의 사고로 끝날 수도 있고 그런 일들을 결정하는 건 하늘이라는 생각을 해 보면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의료에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고, 병마와 싸우는 심부전 환자들에게도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 하루하루를 감사히 여기며 사시길 기원해 본다. 오늘 이 순간은 다시 오지 못할 소중한 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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