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n번방’ 사건에서 드러난 공동체교육의 민낯

이우영 한국기술교육대 기계공학부 교수
  • 등록 2020-04-01 오전 5:00:00

    수정 2020-04-01 오전 5:00:00

최근 논란 중인 ‘n번방’ 사건의 핵심 용의자 25살 청년의 얼굴과 신상이 언론에 공개되며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는 경우를 본다. 나치 치하에서 500백만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 전범 재판을 취재한 한나 아렌트는 독일 친위대 아이히만에 대해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는 광신자나 반
사회성 인격 장애자들이 아니라 상부의 명령에 순응한 아이히만 같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었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일면 ‘n번방’ 용의자인 이 청년과 비슷해 보이지만 아니다. 아이히만의 뒤에는 나치즘이라는 전체주의의 망령이 있었지만, 이 청년 용의자의 뒤에는 어두운 우리 사회의 ‘이중성과 물질만능’의 세태가 있을 뿐이다.

인간의 선과 악의 이중성을 다룬 괴테의 유명한 희곡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는 제자 바그너 앞에서 고뇌를 토로한다. “내 가슴속엔, 아 아! 두 개의 영혼이 깃들어서, 하나가 다른 하나와 떨어지려고 하네. 하나는 음탕한 애욕에 빠져 현세에 매달려 관능적 쾌락을 추구하고, 다른 하나는 과감히 세속의 티끌을 떠나 숭고한 선인들의 영역에 오르려 하네.”

파우스트는 희곡의 단순한 등장인물이 아니고, 인간 존재를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내면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힘 간의 싸움에서 어느 것이 이기느냐 하는 인간 본성의 문제를 탐구하고 있다.

그러나 파우스트의 고뇌와 ‘n번방’의 행위는 또 다르다. 괴테는 파우스트를 통해 ‘개인의 성찰’ 추구하지만 ‘n번방’의 욕망은 ‘타인의 물질과 법규범 파괴’를 향하고 있다. 그것도 지극히 약하고 가난한 여성을 대상으로 착취와 극악한 범행을 저질렀다.

이런 점에서 이번 범죄는 ‘악의 평범성’도 ‘인간 욕망의 일탈’도 아닌 우리 사회가 방치하고 키워온 악성 종양 같은 이중적 모순의 ‘종합판’으로 봐야 한다.

용의자를 비난하는 우리 또한 일정 부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돌아보라. 연일 언론이나 소셜미디어 등에서 노출되는 몰염치하고 비윤리적인 행위들, ‘내로남불’과 같은 도덕불감증, 법치를 무시하는 과격한 집단행동들.

여기에 사람들은 이미 좀비가 되어 방관하거나 마녀사냥에 무비판적으로 동참하곤 한다. 이러한 반응에 잣대가 있다면 단지 지극히 개인적인 ‘내’가 지지하는 성향이나 진영만이 있을 뿐이다. 명분이나 도덕을 상실한 채 달리는 기차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는 이미 남의 일이다. 단지 나의 이익과 우리 편의 승리만이 명분보다 앞설 뿐이다.

‘n번방’ 범죄는 이러한 어른사회의 생생한 민낯이 그대로 악성 바이러스가 되어 투영된 것이다. 미성년 세대의 가치관 혼란과 도덕적 기준은 흔들린 지 이미 오래다. 미성년 아이들의 대화를 보노라면 성을 바라보는 의식이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성찰조차 아예 상실한 경우가 있어 섬뜩할 때가 있다.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자칫하면 정보통신 강국 대한민국을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윤리적 파멸로 향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 검색 한 번으로 필요한 정보들을 바로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이제부터라도 청소년들에게 정보의 질적 수준과 바른 정보와 그렇지 못한 정보를 구분해 낼 수 있는 분별력, 그리고 건강한 인성과 절제를 길러주지 못한다면 아무리 강력한 법과 처벌로 다스린다 해도 유사한 범죄는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미래세대를 위한 사회 공동체의 솔선과 도움을 강조한 격언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진정한 ‘사람중심, 인간존중의 사회’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뼈아픈 반성과 자성을 위해 나서야 한다.

건강한 공동체 교육의 출발은 옳고 그름을 스스로 분별할 수 있는 ‘내 자신의 자존감 회복’, 그리고 사람을 상품화하는 물질만능을 벗어난 ‘타인에 대한 존중의 회복’에 있다. 고전을 통한 인간 내면의 깊이 있는 성찰, 나아가 건강한 공동체를 위한 어른세대의 삐뚤어진 양심을 다시 고쳐 세워야 할 때이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미녀 골퍼' 이세희
  • 돌발 상황
  • 2억 괴물
  • 아빠 최고!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