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부품 소재 극일(克日)의 조건

이우영 한국기술교육대 기계공학부 교수
  • 등록 2019-09-03 오전 5:00:00

    수정 2019-09-03 오전 5:00:00

몇 년 전 세상을 놀라게 한 특이한 경력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이 있었다. 투유유와 다나카 고이치, 이들의 공통점은 ‘3무(無)’, 즉 세 가지가 없다는 점이었다.

중국 여성약학자 투유유는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특효약을 발견한 공로로 2015년 노벨 생리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세계가 놀란 것은 ‘박사학위, 해외학술 경력, 저명대학의 교수나 학술원 회원 경력’ 이 세 가지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2002년 만 43세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일본인 다나카 고이치, 그는 수상 기자회견을 푸른 작업복 차림으로 했다. 젊은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5년 만에 도호쿠대에서 전기공학 학사를 취득하였다. 전기공학을 전공한 사람이 노벨 화학상을 받은 사실도 놀랍지만 대학 졸업 후 곧바로 나고야에 있는 시마즈제작소에서 현장기술자로 일해 온 경력이 전부라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두 사람에게서 느끼는 공통점은 우리가 흔히 연상하기 쉬운 ‘뛰어난 천재’이거나 ‘학문적 권위가 있는 학자’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이웃과도 같은 친숙한 이미지이다. 그러나 이들이 탁월한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문제해결을 위한 지독한 끈기와 집념, 그리고 부단한 절차탁마(切磋琢磨) 훈련과 숙련을 통해 현장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때문이다.

자기직업 분야에 관한 지식이나 이론, 실전경험 등을 완벽하게 익힌 최고 수준의 숙련 현장전문가를 우리는 장인, 또는 마이스터라고 부른다.

오늘 우리 앞에 위기로 다가온 부품소재 자립과 극일(克日)의 과제. 그 시작은 마이스터, 즉 고급기술력을 갖춘 창의적인 장인을 길러내는 평생직업 교육훈련이라는 소신이다. 이를 통한 궁극적인 목표는 극일을 넘어 세계일류를 향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품 소재 기술은 첨단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자기 영역을 꿋꿋이 지키고 있는 순수 아날로그 분야이거나 혹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결합된 융합 기술 분야가 대부분이다. 그러기에 혼이 담긴 장인의 손끝에서 오랜 시간 노력과 끈기 그리고 식지 않는 열정이 함께하지 않으면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인더스트리 4.0’의 붐과 함께 제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독일은 이미 산업 혁명기에 중세 길드를 마이스터라는 고급 숙련기술인력 양성 시스템으로 전환시켰고 이들의 기술력과 창의성을 새로운 산업혁신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독일의 마이스터와 같은 고숙련 현장 전문가를 체계적으로 양성할 수 있는 직업교육훈련 경로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었다. ‘산업현장 일학습병행 지원에 관한 법률’이 그것이다. 고교단계에서부터 학·석사 과정, 즉 고숙련 마이스터 과정에 이르기까지 학위와 자격을 동시에 취득하게 함으로서 현장형 핵심인재의 성장경로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게 될 평생학습의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이다. 한국형 도제제도가 시행된 지 6년 만에 여러 현실적 논의를 거쳐 이제 법적근거가 마련되어 천만 다행이다.

독일 문호 괴테의 역작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한 구절이 새롭다. 1807년에 집필을 시작, 1829년에 완성했으니 독일의 길드가 산업화시대의 마이스터로 전환되던 시기였다.

“처음으로 세상에 나가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굉장한 존재로 생각하고 많은 재능을 습득하려고 하며 무엇이든지 다 가능한 것으로 만들려고 애쓰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그의 형성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게 되면, 보다 큰 집단에 들어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배우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는 것을 익히며 의무에 따라 활동하는 가운데에서 자기 자신을 망각할 줄 아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때 비로소 그는 자신을 알게 되지요.”

야르노가 빌헬름에게 수업증서를 수여하면서 하는 이 말에는 인간이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에 대한 대답이 담겨 있다.

이제 우리 극일의 해법은 마이스터의 길에 있다. 과거의 전범 국가들이 여전히 세계질서를 주무르고 있는 이기심으로 가득 찬 국제사회, ‘힘 있는 국가가 정의’란 아테네의 장수 투키디데스의 말로 새로운 다짐을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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