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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방탄 RM, '키아프 대표작' 샀다 '달동네 서정' 품었다

평소 미술에 남다른 안목·취향 보여온 RM
최근 작가 정영주 콜라주 회화작품 구입해
한지주름에 산동네 따뜻·안온한 불빛 들여
16일부터 미술장터 키아프서 온라인 소개
선화랑에선 16∼23일 오프라인 작품 전시
"젊은 청년의 미술사랑, 선한 영향력 기대"
  • 등록 2020-09-14 오전 4:00:00

    수정 2020-09-14 오후 8:13:05

작가 정영주의 회화 ‘사라지는 고향 730’(2020). 최근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이 구입한 작품이다. 120호(150×150㎝) 규모의 캔버스에 한지를 붙이고 아크릴물감으로 채색해 완성했다. 기억에 묻어버린 채 오래 잊고 살았던, 고단하지만 따뜻했던 달동네의 서정을 고즈넉한 불빛으로 이끌어냈다.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달동네의 새벽은 일찍 왔다. 날이 채 밝기도 전 이집저집에선 부산한 소음이 들렸다. 희미한 ‘30촉 백열전구’가 하나둘 켜지고 달그락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선잠을 깨웠다. 빛보단 어둠이 아직 세상을 덮고 있을 그때, 멀리서 보면 그 불빛도 제법 운치가 있었다.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인 집들은 안온해 보이기만 했으니까. 물론 안다. 저 풍경이 ‘아름다운 세상’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누구에게는 먹고살기 위한 치열한 생존전쟁의 시작점이었고, 지독히도 쓰라렸던 고단한 삶의 종착점이었다는 것을. 도시 저 위 가파른 산등성이, 바로 저곳에 우리들 집이 있었다.

그런데 여기 이곳 달동네는 아닌 듯하다. 아스라이 동이 트는 저 산동네는 한없이 따뜻하기만 하다. 기와도 사치인지라 슬레이트나 천막으로 지붕을 삼은 저 집들 사이, 드문드문 뜬 불빛은 정겹기만 하다. 이젠 이조차 저무는 장면이 아닌가. ‘다 지나가더라’는 세월의 무상함도 스치고, 그나마 보듬고 살아냈던 시절의 그리움도 치고 갈 터. 시간도 묻어버린 상처까지 절대미감으로 승화시키는 작가 정영주(50)의 회화 ‘사라지는 고향 730’(2020)이 말이다.

누구도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을, 작품이 갖는 애잔한 서정성은 청년 미술애호가의 심장에도 깊이 박혔나 보다. 최근 방탄소년단의 리더 RM(김남준·26)이 정 작가의 ‘사라지는 고향 730’을 구입했다. 120호(150×150㎝) 규모의 캔버스에 한지를 붙이고 아크릴물감으로 채색한 작품은 5000만원에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컬렉션 과정은 43년째 서울 인사동을 지키고 있는 국내 대표 갤러리인 선화랑을 통해 이뤄졌다. 지난 3월 선화랑에서 정 작가를 직접 만난 RM이 작품 소장 의사를 밝혔고, 정 작가가 흔쾌히 수락하면서 성사됐다. 이후 정 작가는 ‘청년 소장가’를 위한 작품에 매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작가 특유의 푸른빛과 황토빛 색조를 한 화면에 동시에 들인 작품은 근래에 100호(130×162㎝) 미만을 주로 내놨던 정 작가로선 드문 대작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RM은 평소 미술과 미술작품에 관심이 많은 아이돌로 정평이 나 있으니. 그저 관심만도 아니었다. 실제로 광폭한 행보로 단지 소문이 아님을 증명하고 다녔는데. 짬이 날 때마다 미술관과 갤러리를 방문해 감상에 몰입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눈에 띄기도 한 거다.

당장 지난달에는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고 있는 ‘이승조 30주기 전: 도열하는 기둥’을 둘러봤단 얘기가 들렸고, 상반기에는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연 ‘윤형근 전’, 금호미술관에서 연 ‘김보희 초대전: 투워즈’에 다녀가기도 했단다. 지난해에는 삼성동 코엑스에도 ‘떴다’. 국내 최대 미술장터인 ‘2019 키아프’(KIAF·한국국제아트페어)를 방문해 부스를 꼼꼼히 돌며 ‘진정한 관람객의 자세’를 보여줘 관계자들을 감탄케 한 모양이다. 이번 컬렉션이 있기 전 RM이 정 작가의 작품을 발견한 곳도 아트페어였다. 지난 2월 코엑스에서 연 ‘화랑미술제’를 다녀가며 선화랑이 걸었던 그림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는 거다.

부산에도 ‘출몰’했다. 지난해 다녀갔다는 ‘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 공간’에서 그가 남긴 방명록 메시지는 두고두고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잘 보고 갑니다, 선생님. 저는 ‘바람’을 좋아합니다.” ‘바람’은 RM이 평소에도 좋아한다고 말해온 단색조 추상미술의 대가 이우환(83) 화백의 대표작이다.

그런 RM에 대한 미술계 평가는 한결같다. 그를 만나본 이들은 한목소리로 RM의 미술적 소양과 이해에 적잖이 당황했다는 반응들이다. 한마디로 “미술품에 대한 안목이나 취향이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데 20대, 그중 가장 바쁘다 할 그가 언제 그런 지식과 정보를 쌓았는지 궁금할 뿐”이란 거다.

△한지주름으로 달동네 따뜻한 정서를 살린 부조회화

“한지가 빛을 흡수하듯 받아들이는 따뜻한 마을의 모습을 통해, 내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언제든 지치거나 힘들 때 돌아가면 받아주는 마음속 고향 같은 고요한 안정감을 느끼게 하고 싶다.”

한치도 어긋나지 않는다. 정 작가의 작품세계는 그이가 말한 그대로다. 오래전 기억 속에 묻어버렸던 내 집, 내 고향을 그린 거니까. 그곳이 설령 ‘사라진’ 혹은 ‘사라지는’ 집이고 고향이어도 내 가족, 내 친구의 흔적이 있는 곳이니까. 여기에 덧붙일 작가의 바람이 있다면 ‘우리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것’에 대한 반추라고 할까. 집이 가진, 빛이 가진, 사람이 가진 ‘꿈틀대는’ 생명력 말이다.

작가 정영주가 자신의 작품 ‘사라지는 풍경 226’(2016·116.7×91㎝) 앞에 앉았다. 정 작가는 “내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언제든 지치거나 힘들 때 돌아가면 받아주는 마음속 고향 같은 따뜻함을 느끼게 하고 싶다”며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한 번쯤 생각하게 하고자 한다”고 말해왔다.


이를 위해 작가는 한지 고유의 물성을 살리는 작업을 한다. 쭈글쭈글한 벽과 지붕, 집과 골목을 비추는 고즈넉한 불빛까지, 구겨서 주름을 잡은 한지를 붙여 형태를 잡는다. 그러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색을 입힌다. 푸르스름하고 노르스름한 소박한 질감과 분위기로 말이다. 손끝을 부르는 이들 부조회화의 입체감은 덤.

그렇다고 저 풍경이 쉽게 나왔겠는가. 프랑스 유학 후 귀국해 어느 날 남산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보는데, 그 사이에 박힌 남루한 판자촌이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판자촌에 불빛을 밝혀 주리라” 마음먹었던 게 오늘에까지 왔다.

2015년 선화랑이 매해 열고 있는 신진작가 발굴 프로그램 ‘예감전’에 나선 뒤 정 작가는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론 막힘이 없었다. 국내는 물론 홍콩·싱가포르·베이징 아트페어 등에서 완판기록을 이어나갔다. 전시에 나오는 족족 팔려나가 “작품 한 점 구입하려면 한두 해는 족히 기다려야 하는 작가”로 이름도 올렸다.

작가 정영주가 2016년에 완성한 ‘길 613’(80.3×116.7㎝). 어린 시절을 산동네에서 보냈다는 정 작가는 “어둡고 볼품없던 동네는 해가 지고 저녁이 찾아오고 불을 켜기 시작하면 완전히 달라졌다”고 되돌아봤다. 작품은 그 시절의 기억을 더듬은, 세상에 다시없을 가상의 공간이다.


△온라인 ‘키아프’, 오프라인 ‘선화랑’서 작품 전시

선화랑은 정 작가의 ‘사라지는 고향 730’을 올해 열리는 ‘2020 키아프’에 화랑 대표작으로 걸 계획이다. 다만 올해 키아프는 예년처럼 진행하진 못하게 됐다. 코로나로 인해 오는 25∼27일 코엑스에서 예정했던 오프라인 행사를 취소한 거다. 대신 16일부터 VIP 프리뷰를 시작으로 온라인뷰잉룸 전시(일반인 오프닝은 23일부터 10월 18일까지)를 연다. 정 작가의 작품은 143곳 갤러리가 출품한 4000여점의 작품들과 함께 키아프 온라인뷰잉룸에서 소개한다.

그렇다고 ‘사라지는 고향 730’을 직접 볼 기회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화상이 아닌 실제 작품을 선화랑에서 전시한다. 키아프 온라인 오픈에 맞춰 16일부터 23일까지다. 전시가 끝난 뒤 작품은 RM에게 건네질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어려운 미술시장 침체에 코로나까지 겹쳐 혹한기를 보내고 있는 미술계에선 RM의 이 같은 행보를 반기는 눈치다. 방탄소년단 팬들 사이에선 이미 RM이 다녀간 미술관·갤러리를 답습하는 ‘RM 투어’ 코스가 성행이라고 하니. 게다가 단순투어에서 나아가 이번처럼 실제 미술품 구매에까지 연결되는 데야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대한민국의 반듯한 청년이 품은 미술사랑이 선한 영향력으로 번져나가길 바란다”는 절절한 기대가 허투루 들리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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