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윤석열 검찰총장의 ‘항명 사태’

  • 등록 2020-01-17 오전 5:00:00

    수정 2020-01-17 오전 5:00:00

새해 벽두, ‘항명’이 새 화두로 떠올랐다. 지나가는 몇 마디 얘기일망정 희망과 미래를 다짐하는 덕담이 오가야 제격이련만 그 자리를 긴장감 감도는 언어가 차지해 버린 것이다. 서로를 대하는 마찰과 불신의 감정에서 초래된 결과다.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주인공이랄까, 책임의 당사자라 할까.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단연 눈길이 쏠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향해 “인사 프로세스에 역행했다”며 공개적으로 나무랐고, 추미애 법무장관은 자신의 명을 거역했다는 이유로 흥분의 목소리를 높였다. 여권에서도 “항명 사태를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며 윤 총장에게 집중 포화를 쏟아붓고 있다.

구태여 윤 총장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사태가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검찰 고위간부들을 물갈이하는 인사가 직접적인 발단이 됐기 때문이다. 핵심권력 주변의 의혹사건들을 한창 파헤치던 수사팀을 뒤흔들어 버렸으니, 사실상 윤 총장이 가장 타격을 받은 당사자였던 셈이다. 그것도 추 장관이 국회 인사청문 보고서도 채택되지 않은 상황에서 임명장을 받자마자 서둘러 처리한 인사였다. 그러고도 “가장 형평성 있는 인사”라는 내부 평가가 나돌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사 협의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는 게 윤 총장에게 쏟아지는 성토다. 만약 고분고분 인사 의견을 내놓았다면 ‘대학살’로 표현되는 교체 사태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긴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수사팀의 손발을 묶은 것으로도 모자라 검찰 직접수사 부서를 대폭 축소하는 내용의 개편안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애당초 정해져 있던 방향을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검찰의 힘을 빼겠다는 의도다.

“조국 전 법무장관에 대해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는 문 대통령의 언급도 검찰을 겨냥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의 가족들이 수사 과정에서 인권을 침해당했다는 청원서를 청와대가 인권위에 보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검찰이 마땅히 해야 했던 일을 두고 시비가 벌어지는 현실이다.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청와대 하명사건·선거개입 의혹도 마찬가지다. 불과 여섯 달 전, 임명장 수여식에서 ‘우리 윤 총장’이라고 불리던 친근감이 경계심으로 바뀐 과정에서 변한 것이라곤 이처럼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진행한 것뿐이다.

돌아가는 분위기도 그리 간단치 않은 것 같다. 여권이 공수처법 통과 및 검경수사권 조정에 이르기까지 정치권력을 확대해 집권을 연장하겠다는 속셈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 개혁’과 ‘총선 압승’이라는 구호가 나란히 외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당사자로서 검찰의 반발은 당연하다. 심지어 “봉건적 명령에는 거역하라”는 비장한 소감까지 등장할 정도다.

파장은 이어진다. 교수, 변호사들이 성명을 발표했는가 하면 진보 논객과 시민단체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청와대 관련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팀의 해체를 반대한다는 청원 참여도 줄을 잇는 중이다. 윤 총장의 입장을 지지하는 ‘집단 항명’이나 다름없다.

아직 일반 여론이 야권보다는 집권층에 더 호의적이라고 해서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국정수행의 무리한 추진에도 불구하고 원활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야권의 분열과 지리멸렬은 또 다른 차원에서 유권자들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이제 관심을 끄는 것은 윤 총장의 거취 문제다. 청와대의 눈총에도 아랑곳없이 경찰청 본청 압수수색에 나서는 등 누그러질 기미가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알아서 그만둘 태세가 아닌 것도 분명하다. 문 대통령의 기자회견 자리에서 “윤 총장을 신뢰하시느냐”라는 질문이 나온 배경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윤 총장의 태도를 이미 항명으로 규정한 여권이다. 그에 대한 처분이 어떻게 나타날지 지켜보게 된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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