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은 지난해 9월 국내 처음 발생했다. 치사율 100%에 높은 전염성 탓에 ‘돼지 흑사병’으로도 불리는 이 감염병을 정부는 강력한 방역대책을 수립, 양돈농장 밀집지역 남하를 막는 성과를 거뒀다. 해외에서도 ASF 방역성공 사례로 벤치마킹 대상이 될 정도다.방역을 진두지휘한 김현수 농림식품부 장관은 박봉균 농림축산검역본부장을 ASF 차단 일등 공신으로 꼽는다.
박 본부장은 검역본부장을 맡으며 사전 방역체계를 구축해 ASF 등 가축전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ASF, 접경지역 오염돼 농가로 전파 판단”
박 본부장은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출신의 동물 바이러스·방역 전문가다. 농촌진흥청 가축위생연구소 연구관으로 업무를 시작해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2016년 검역본부장에 취임했다.
박 본부장은 ASF의 감염 경로에 대해 북한으로부터의 유입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그는 “공개적으로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접경지역이 오염됐고 오염된 물건이나 병원체가 간접적 수단을 통해 농가에 왔다고 추측하고 있다”며 “북한에서 지난해 5월 ASF가 발생하면서 접경지역 위험에 대해 인지했기 때문에 예상한 시나리오”라고 분석했다.
박 본부장은 “처음엔 접경지역 5개 시·군 정도만 관리지역으로 지정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관리지역이 무너지면 바이러스가 바로 남쪽으로 내려간다”며 “후방 지역 또한 완충지역으로 관리해 저지선을 형성해야 한다고 판단해 건의했다”고 전했다.
현재 ASF는 양돈농가의 경우 한숨을 돌린 상태지만 야생멧돼지에서는 지속적으로 감염 사체가 발견되고 있다. 신중할 필요도 있지만 발생지역 재입식(돼지를 다시 사육하는 것)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는 게 그의 견해다.
박 본부장은 “올해 들어 멧돼지 감염 개체가 전체 70% 정도로 급속히 늘어났는데 이는 멧돼지 사이 감염이 절정에 이르렀다고 본다”며 “늦어도 봄철이 되면 재입식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입식의 단서도 달았다. 그는 “사료 공급방식이나 축산차량 통제 등 전염병 방어 역량을 갖춰야 한다”며 “현재 생축을 도축장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산지 도축 후 지육 형태로 유통하는 방식으로 바꿀 필요도 있다”고 제언했다.
|
박 본부장이 취임한 이후 검역본부는 이번 ASF 대응 뿐 아니라 방역체계 개편을 통해 조류인플루엔자(AI)나 구제역 등을 효율적으로 막고 있다.
국내 AI 발생은 2018년 3월 충남 아산이 마지막이다. 구제역의 경우 지난해초 경기 지역에서 발생하긴 했지만 4건으로 최소화했다. 올 겨울철에는 아직까지 구제역 발생 사례가 없다.
박 본부장 체제에서 가장 큰 변화는 예찰 방식이다. 그는 “AI는 예전 같으면 발생하는 시점에 예찰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위험시기 보다 한두 달 앞서 실시하고 있다”며 “구제역도 검사 물량이나 순서 등을 변경한 후 지난해 10월부터 미리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년 1월까지가 임기인 그는 올해 구제역·AI·ASF가 발생하지 않는 ‘3무(無)’를 목표로 세웠다.
가축전염병에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많이 있기 때문에 그는 현재 코로나19의 전파 양상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코로나19가 사람 사이 전염병이지만 바이러스라는 점에서 ‘병원체, 숙주, 환경’ 3가지를 통제하는 방식은 ASF 등과 유사하다는 판단이다.
박 본부장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있고 걸리는 사람이 있고 이 병을 퍼트리는 환경이 있다”며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동을 자제하고 조심해야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중국이 우한을 봉쇄한 1월말쯤이지만 실제 중국은 두달 전부터 문제를 키웠다”고 진단했다.
박 본부장은 정부가 대처를 잘하고 있지만 중국에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부터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우리 사회에 미치는 파장이 줄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여행 자제 권고나 발열 체크, 소독 실시 등 제대로 준비를 한 것이 1월말쯤”이라며 “만약 조금 더 조치를 빨리 했다면 지금처럼 경제 위축이나 사람들이 동요하는 정도는 훨씬 줄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