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죄송했다"지만 반복된 제로페이의 무리수

  • 등록 2019-06-18 오전 6:15:00

    수정 2019-06-18 오전 8:57:44

[이데일리 김보경 기자] “그동안 쓸 데 없는 제로페이로 죄송했습니다. 시장님께서는 서두르시지, 준비가 부족해서 되는 데는 없지,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 됩니다.”

언뜻보면 직장인들의 익명 게시판인 블라인드 앱에 나올 법한 얘기지만 이는 서울시가 얼마전부터 시작한 제로페이 광고에 등장하는 공무원의 멘트다.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가 본 이 광고에서 받는 첫인상은 신선함이었다.

제로페이에 대한 자아비판 같은 이 광고는 무조건 소상공인을 살려야한다느니, 절차가 불편함에도 `할머니도 손쉽게 사용한다`는 억지스러운 내용의 이전 광고와는 확실히 차별점이 있었다. 광고이긴 하지만 실명을 공개하고 모델로 나서 고개를 숙인 공무원의 모습이 딱하기도 했다.

광고에서의 고백처럼 제로페이는 성급했다. 시간적 여유를 두지 않고 반강제적으로 가맹점을 넓혔고 어떻게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 박원순 시장의 치적사업으로 만들려는 조급증이 오히려 반감을 샀다. `박원순 페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박 시장이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건 정책이다. 소상공인의 수수료를 0원으로 한다는 선한 의지로 시작한 정책이지만 이미 결제사업자들이 있는 시장에 관(官)이 스스로 사업자로 뛰어들어 예산을 쏟아붓고 공무원을 총동원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수수료를 낮추지 않던 카드사들이 제로페이 등장 후 수수료를 낮춘 결제서비스를 내놓는 등 메기효과가 분명히 있지만 불공정 프레임에 갇혀 부각되지 못햇다.

사과로 시작한 광고는 달라진 제로페이 홍보로 이어진다. 편의점과 60개 프렌차이즈에서 사용이 가능한 쓸 데 많은 제로페이를 강조하고 있다. 결제창을 열고 소비자가 직접 QR코드를 스캔하는 불편함도 이제는 신용카드처럼 포스(POS·판매시점정보관리)기에서 `삑`하며 결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당초 제로페이 출시 때부터 도입하겠다고 했던 것이 이제 시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제로페이가 달라졌다기 보다는 이제야 준비가 됐다 정도로 평가할 수 있다.

제로페이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사실 아직도 대다수의 국민이 제로페이를 잘 모른다. 많은 가맹점이 제로페이를 취급하게 됐지만 점주나 종업원도 여전히 제로페이가 낯설다. 가맹점이 늘었지만 사용실적은 아직도 극히 미미한 이유다. 이제는 제로페이를 제대로 알리고 소비자 선택을 받을 때다.

하지만 제로페이는 또 성급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포스기 결제가 가능한 가맹점을 늘리기 위해 포스기 업그레이드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활성화라는 명목이다. 금융위원회도 보조금 지급이 문제가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하지만 이전에 비슷한 사례에서 카드사에는 불법으로 규정한 전례가 있어 또 다시 불공정 경쟁 논란이 불붙고 있다.

서울시 한 공무원은 제로페이 밀어주기에 대한 비판에 “신용카드 정착을 위해 정부가 지원을 했듯 제로페이도 어느 정도 결제망을 갖출때까지는 서울시나 정부가 나서는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민간 간편결제사업자들이 만든 시장에 숟가락을 얹은 제로페이에 합당한 해명은 아니다. 이러한 밀어주기는 제로페이에 관치페이라는 부정적 인식만 더해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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