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은퇴자마을 입주하니 막막하던 귀농살이 이제 든든

문경시 마성면 은퇴자 공동체 마을
3개월 단위 농산어촌 체험…경쟁률 6대 1
체험 넘어서 귀농까지 조력
  • 등록 2019-07-24 오전 5:10:01

    수정 2019-07-24 오전 5:10:01

△문경시 마성면 상내1길에 위치한 공무원 은퇴자 공동체 마을 입구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염소뿔도 녹는다’는 대서(大暑)를 하루 앞둔 지난 22일. 경북 문경시 마성면 상내1길 냇가에 설치된 평상에 어르신들이 빙 둘러앉아 부침개, 막걸리 등 새참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곳은 공무원연금공단이 고령화 시대를 맞아 은퇴자의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위해 조성한 공무원 은퇴자 공동체 마을이다. 이 새참 모임에서는 잘 나가던 소싯적 얘기, 뒤늦게 경험하게 된 농촌 생활에 대한 소회, 동네 주민 소식 공유 등 얘깃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곁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기자에게 한 어르신이 막걸리를 건네며 “기자 양반, 한잔 시원하게 마시고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가”라고 권한다.

한 70대 어르신은 “채소 길러 놓은 거 함 보소. 우리 밭 함 구경시키주께.”하며 한쪽 텃밭으로 안내한다. 평생을 공직에 몸을 담았던 만큼 슬쩍 봐도 텃밭을 일구는 데는 익숙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텃밭을 소개하는 그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엿보였다. 다른 한쪽 편에서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천에 황토 염색을 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어르신은 “마을 주민들이 봤을 때 애써서 저런 일을 하느냐고 하지만 나에겐 일이 아니다”며 “그저 놀이일 뿐이다”고 미소를 지었다.

문경의 공동체 마을 입주자들의 일과는 정해져 있지 않다. 텃밭 일구기나 황토염색이 싫다면 시원한 바람이 부는 한옥 대청마루에 앉아 한낮의 여유를 즐겨도 된다.

6대1 경쟁 뚫고 ‘문경 석 달 살기’

공무원연금공단이 문경시에 조성한 은퇴자 공동체 마을은 3개월 동안 농촌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체험형이다. 매년 3월에서 12월까지 3회차로 운영되며 현재 생활하고 있는 퇴직 공무원들은 2기다. 기왓장 지붕으로 된 한옥 3채에 총 6명의 퇴직 공무원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퇴직자 혼자 또는 부부가 함께 내려와 서로 이웃이 돼 줬다.

시청에서 근무했다는 한 어르신은 “공무원연금이 보내주는 소식지를 통해 처음 연금 생활자를 위한 은퇴자 공동체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은퇴 후 TV만 보며 무료한 일상을 보내다가 변화를 주고 싶어서 공동체 마을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교직 생활을 했던 또 다른 어르신은 “귀농에 대한 생각은 있었지만 막상 실천에 옮기려니 너무 막막했다”며 “공동체 생활이라든지 지역사회 봉사활동이라든지 취지가 좋아 도전하게 됐다”고 전했다.

△공무원 은퇴자 공동체 마을 한 입주민 앞 마당
공무원연금공단은 작년에 제주 서귀포 지역에 폐교를 활용해 처음 은퇴자 공동체 마을을 시범운영했고 올해부터 문경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은퇴자 공동체 마을을 꾸렸다. 유형은 귀농·귀촌 교육 위주의 정주형(8~10개월 단위)과 농·산·어촌 체험 위주의 체험형(3개월 단위)이 있다.

입주하는 전직 공무원들은 대부분 수도권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한 사람들로 은퇴 후 단기간 싼 월세에 농촌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려 지원했다고 말한다. 한 입주자는 “여기 월 사용료가 20만원 밖에 안 된다”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몇 달을 수려한 경관 속에 살고 있어 만족감이 크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은퇴자 공동체 마을의 경쟁률은 꽤 높다. 올해 체험형 모집인원은 129명이었는데 신청 인원은 741명에 달해 5.7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10개월여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정주형의 경우 31명을 뽑는데 217명이나 지원해 경쟁률이 7대 1이었다.

△공무원 은퇴자 공동체 마을 입주민들이 황토염색 작업을 하고 있다.
마을 이장이 리더…농사 노하우 전수

공무원연금공단은 은퇴자 마을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한 은퇴자는 “공무원연금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입주자 지역별 리더를 배치해주고 다양한 농촌체험 프로그램도 소개해 준다”며 “시골 생활이 서툴기는 하지만 차근차근 배워나간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적응 중”이라고 강조했다.

문경의 공동체 마을 리더는 전직 마을 이장이다. 마을 리더는 인근 농가와 연계한 농사 체험을 비롯해 영농교육, 건강·문화 교실 등 입주자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은퇴자 마을은 전국 농촌의 빈집이나 폐교를 리모델링해 조성한 만큼 공동화된 농촌을 살리는 데에도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 문경도 마찬가지다. 공무원연금 관계자는 “문경시는 4개 마을에 예산을 지원해 숙박 체험시설을 조성했으나 운영이 어려워지자 공무원연금공단과 손잡고 은퇴 공무원들을 유치했다”고 설명했다. 전직 이장 출신의 관리인은 “공무원연금이 은퇴자 공동체 마을을 조성한 뒤로는 마을에 활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공무원 은퇴자 공동체 마을 한 입주민이 텃밭을 일구고 있다.
공무원연금이 공무원 은퇴자 공동체 마을을 본격적으로 시행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귀농을 준비하는 은퇴자가 생겼다. 문경 공동체 마을에는 앞서 체험했던 1기생 가운데 일부가 문경으로의 귀농을 준비 중이다. 공동체 마을 한 입주자는 “은퇴자 공동체 마을을 통해 부담 없이 농촌 생활에 대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며 “이번 체험을 통해 무리 없이 귀농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공무원연금 관계자는 “은퇴 후 농촌에서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예비 귀농인들이 문경에 정착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맞춤형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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