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CEO 중징계 근거 모호…금융당국은 뭐했나

금융당국 규제 완화에 '라임' 적격운용사 탈바꿈
증권사 '내부통제기준' 있지만 사모펀드에 헛점
여론 의식한 중징계보다 적절한 행위 처벌 필요
  • 등록 2020-10-27 오전 12:11:00

    수정 2020-10-27 오전 12:11:00

[이데일리 양희동 조용석 유현욱 고준혁 기자] “증권사는 판매전문회사이지 감사전문이 아니다. 비(非)적격 운용사 상품을 팔았다면 문제지만 금융당국이 다 허가 내준 곳이다. 소비자 보호가 중요했다면 금융당국이 운용사에 대한 관리감독을 더 강하게 했어야 한다.”

금융감독원이 라임자산운용(라임) 환매 연기 사태의 책임을 물어 신한금융투자, KB증권, 대신증권 등 3곳의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연임 및 3~5년 간 금융권 취업이 제한되는 중징계를 통보한 데 대해 잘못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라임은 2015년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적격 운용사로 둔갑했는데, 그 펀드를 판 증권사가 ‘내부통제기준’ 마련 미비란 모호한 근거로 CEO까지 중징계하는 것은 책임 전가란 비판도 나온다. 또 2015년과 2018년 각각 CEO에게 중징계를 내린 동양증권과 삼성증권의 경우 ‘동양 사태’, ‘유령 주식’ 등 명백한 회사 측 과실로 빚어진 일이란 점에서 이번 조치는 과도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新상품 홍수 속 ‘내부통제기준’ 근거 처벌은 과도

금감원이 오는 29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라임 사태의 책임을 물어 해당 증권사 CEO들에게 ‘직무 정지’ 수준의 중징계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업계에선 징계 근거가 된 내부통제기준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모든 증권사가 법률 및 시행령에 부합하는 자체 내부통제기준을 갖추고 있지만, 사모펀드라는 새로운 상품에 대해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반론이 나온다. 실제 국내 최대 헤지펀드였던 라임은 4개 모(母)펀드와 173개 자(子)펀드를 운영, 80여 개 자산을 편입하는 등 복잡한 펀드 구조를 악용해 부실을 숨겼다.

업계 한 관계자는 “라임 펀드 판매 당시 증권사들은 각자의 내부통제기준에 맞춰 상품전략위원회 등을 통해 실무 담당자와 부서장 등이 참석, 판매시 문제점 등을 심사해 상품을 내놓았을 것”이라며 “라임은 적격 투자자라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고 보고누락 우려도 있는데다, CEO가 회사 내 모든 업무를 완벽하게 알 수도 없다”고 말했다.

증권사 내에서 내부통제기준이 실효적으로 작용하는지 여부도 해석의 영역이며, CEO를 직접적인 ‘행위자’와 같은 수준으로 금감원이 판단한 것 역시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라임 사태는 판매사의 경우 실제 펀드 판매에 관여한 행위자가 큰 처벌을 받아야하는데 CEO가 행위자가 될 수 없다”며 “내부통제기준 마련 미비를 근거로 들었다면 작위적 해석이며 사태의 사후 수습은 증권사 입장에선 당연히 감내할 부분인데 CEO까지 확대한다면 처벌을 위한 징계일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금감원은 이에 대해 “법적으로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가 명시돼 있고 CEO가 본인 직할 부서 업무 외엔 제재 대상에서 벗어난다면 문제”라며 “투자 상품 판매는 증권사의 주요 업무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펀드 사태 CEO 중징계…‘산업 위축’·‘인재 손실’ 우려

하지만 급변하는 금융 환경 속에서 상품마다 맞춤형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를 근거로 CEO까지 중징계한다면, 향후 산업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또 사모펀드 사태로 CEO에 대한 중징계를 이어간다면 증권업계 밑바닥부터 경험과 실무를 차곡차곡 쌓아 CEO에까지 오른 증권업계 인재를 한꺼번에 잃는 것도 업계로서는 큰 리스크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라임 이후에도 옵티머스, 젠투, 팝펀딩 등 불완전판매 이슈로 문제가 된 사안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데 판매사에게 똑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면 CEO가 남아날 곳이 없을 것”이라며 “금감원은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역할도 있지만 금융시장 안정도 중요한 임무인데 이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CEO 책임을 너무 광범위하게 인정하면 능력이 있어도 사고가 터질 때마다 중징계를 받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결국 CEO 임기 동안 운에 맡겨야 한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또 다른 관계자는 “증권업은 사람이 자산인 업(業)인데 업계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CEO들을 한꺼번에 처벌하고 재취업까지 금지된다면 그들이 가진 경험도 전부 사라진다”며 “해외에선 성공한 기업은 실패도 자산화하는 만큼 경험을 자산화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사모펀드 사태에 따른 징계 수위가 여론에 좌우돼선 안된다는 시각도 있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장)는 “금융당국의 징계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칼이다. 회사별 차이를 잘 감안해서 징계 수위를 결정해야 한다”며 “피해자가 많다고 여론이 득세하면 중징계, 그렇지 않으면 경징계 해서는 안되며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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