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藝인] "빼고 또 빼내니 뭐가 남더냐…허옇고 퍼런 닥죽"

노화랑서 10년만에 개인전 '신양섭 화백'
50년 화업동안 서서히 색빼며 남긴 흰색
옛 목조건물 단청에 올리던 푸른색 더해
으깨고 누른 닥죽 덩어리 캔버스에 붙여
단순·간결한 시처럼 절정의 순백 찾으려
  • 등록 2020-02-18 오전 12:35:00

    수정 2020-02-18 오전 1:04:57

신양섭 화백이 서울 종로구 노화랑에 건 자신의 작품 ‘순백을 찾아’(2019) 앞에 섰다. 10년 만의 개인전에 화백은 50년 화업 중 가장 파격적인 변화를 들고 나타났다. 닥죽을 으깨거나 눌러 펼친 단색화풍의 추상화다. “시처럼 간결한 언어로 말하고 싶은 절정의 흰색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뭉치고 으깨 덕지덕지 얹은 덩어리들. 시골길 어느 돌담이 이렇게 다져졌을까. 흙덩이인 듯 돌덩이인 듯 울퉁불퉁한 질감이 화면을 덮친 듯하다. 더 이상 허물어지지도 흩어지지도 않게 멈춰버린 시간. 켜켜이 포갠 그 세월이 얼마라고 할 건가. 이 형상을 더듬으며 그는 덤덤히 말한다. “마음이 편하다. 이젠 금이 갈 것도 깨질 것도 없지 않나. 1000년을 간다니까.”

서울 종로구 인사동 노화랑. 원로화백 신양섭(78)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간과 세월을 화면에 쌓아낸, 허옇고 퍼런 닥죽을 잔뜩 짊어진 채 말이다. 한동안 화랑가에서 보이지 않던 그이가 이 공간, 이 자리에 다시 ‘개인전’을 열기까지 딱 10년이 걸렸다.

왜 그리 두문불출했느냐는 질문에 “공부하고 작품하고, 작업실에서만 살았다”는 담담한 대답이 돌아왔다. 전시장을 채운 그이의 작품 20여점이 그렇듯, 담백하고 간결하다. 하지만 과연 속까지 그럴까. 캔버스 안쪽에서도 화백의 작은 체구에서도 멈추지 않고 뿜어나오는 ‘요동’이 느껴지는데. 조용한 가운데 끊임없이 파장을 내보내는 ‘정중동’이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신양섭의 ‘순백을 찾아’(2019). 단청에 올리는 푸른색을 닥죽에 주입한 뒤 흙담처럼 쌓아올렸다. 순백을 남기는 과정에 걸쳐 있는 단 하나의 점이 된 ‘푸름’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1000년 갈 닥죽으로 찾아가는 ‘흰색’

여느 흙·돌과는 다른 색이다. 첩첩이 올린 신 화백의 ‘덩어리들’ 말이다. 하얗다 못해 허연, 푸르다 못해 퍼런 뭉치니. 맞다. 이거다. 그이의 ‘덩어리 그림’이 특별한 두 가지를 꼽자면. ‘닥’과 ‘색’. 10년에 걸쳐 고심하고 빼냈다는 그 정수 얘기다.

‘닥 그림’은 이런 거다. 한지의 주재료인 닥을 죽처럼 물에 개어 캔버스에 붙이거나 눌러 덮는 형태. “닥에 색소를 넣든지 뿌리든지, 그 두 방법으로 마티에르를 낸다”고 했다. 덕분에 그이의 평면작업은 마치 부조처럼 두툼한 양감을 품고 있다. 그런데 어쩌다가 닥을 재료로 쓰게 됐을까. ‘균열’ 때문이란다. “30년쯤 지난 예전 유화작품을 보니 쩍쩍 갈라지는 크랙(균열)이 생기더라. 갈라짐 없이 오래도록 남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에 닥이 보였다.”

신양섭의 ‘순백을 찾아’(2019). 물에 개어 죽처럼 만든 닥죽을 덩어리로 빚어 화면에 붙였다. 화백은 자신의 흰색을 “옛 어머니들의 깊은 사랑과 순박한 정서”라고 설명했다(사진=노화랑).


마침 조각을 전공한 둘째 아들(신기운 영남대 미술학부 교수)이 자주 소재로 쓰던 닥을 눈여겨봤던 터다. “전주에서 나오는 닥을 가져다 쓴다. 물을 섞는 작업이라 항상 부패할 염려가 있는데, 햇볕아래 잘 말리는 등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편안하게 말하지만, 편안하게 들리진 않는다. 향토색 짙은 진짜 흙벽 같은 붓질을 했던 이전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형상이니까. 그도 그럴 것이 딱 10년 전만 해도 말이다. 신 화백은 토속적인 질박함으로 농촌에서나 볼 수 있을 아궁이와 항아리, 집과 산과 소 등을 보일 듯 말 듯한 아련한 형체로 그려냈다. 유화물감과 붓질만으로 말이다. 덕분에 그이의 작품은 고향의 향수에 젖어 있는 이들에게, 척박한 고독감에 짓눌린 도시인들에게 애틋한 서정을 안겨줬더랬다. 그러던 그이가 예고편도 없이 이제껏 한 번도 보이지 않은 새로운 화풍을 들고 나온 게 아닌가.

신양섭의 ‘하얀 추억’(1991).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걸쳐 집중적으로 발표한 연작 중 한 점이다. 서서히 색을 빼내는 과정이었지만 지금과는 완연히 다른 작품세계다. 유화물감과 붓으로 아궁이와 항아리, 집과 산과 소 등 토속적인 정서를 아련한 형체로 그려냈다. 이번 전시에는 나오지 않은 작품이다(사진=노화랑).


변한 게 한 가지 더 있다. ‘흰색’이다. 오래전부터 꿈틀댔던 ‘흰색’의 욕구를 풀어낸 거다. 화업 50년 만에 기어이. 빼고 또 빼내 오로지 하나로 남을 순수한 흰색을 위해, 어찌 보면 신 화백은 화단이 그간 인정해온 토속과 향토, 구상과 반구상을 다 던져버린 셈이다. 조짐이 전혀 없던 건 아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걸쳐 집중적으로 발표한 연작 ‘하얀 추억’이 있었다. 서서히 색을 빼 가는 과정이 보였던 유화들. 그때부터 가슴에 품어둔 흰색 결정체를 이제야 제대로 걸러냈다고 해야 할까.

“정성을 다해 과정을 일궈가는 옛 어머니들의 깊은 사랑, 그 순박한 정서를 담아낸 거다. 어머니는 매일 장독대 앞에 쌀을 올리고 한지에 불을 붙여 하늘로 날렸다. 내 흰색은 그런 색이다.”

그렇다면 푸른색은 어찌 설명할 건가. “정화수다. 하늘로 치솟는 어머니의 소망이 구름으로, 별로 대접의 물 위에 떠 있는 모양이다.” 흰색을 남기는 과정에 걸쳐 있는 단 하나의 점이 된 그이의 ‘푸른색’은 옛 목조건물의 단청에 올리던 그 푸름을 가져온 거다. 하얀 작업이 그랬듯 분청이나 군청을 닥죽에 주입하고, 아니라면 뿌리고 다져 오묘한 화면을 만들어낸다. 작품마다 차이가 있다면 ‘흰 바탕에 푸름이 얼마나 남아있는가’ 정도라고 할까. 결국은 ‘순백을 찾아’(2019)다. 그간 작업해온 100여점에서 골라냈다는, 전시장에 건 20여점의 동일한 작품명이 말이다.

신양섭의 ‘순백을 찾아’(2019). 단청에 올리는 푸른색을 닥죽에 주입한 뒤 흙담처럼 쌓아올렸다. 순백을 남기는 과정에 걸쳐 있는 단 하나의 점이 된 ‘푸름’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걸러내고 덜어내고 줄이고…“시처럼 뽑아낼 것”

닥이든 색이든, 신 화백의 작품세계를 관통해온 키워드는 ‘단순과 간결’이다. 어떻게 하면 더 덜어내고 더 줄여서 순수한 진액만을 뽑아낼까를 고민해왔다. “문학은 잘 모르지만, 결국 그림은 시 같은 형태여야 할 거다. 화가가 공간을 다 채우는 건 과격한 짓이다. 어딘가 무너지고, 가다가 마는 것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럼에도, 방식은 달라졌을지언정, 여전히 그이를 움직여온 주제는 고향이다. 충남 서산은 40여년을 그려온 유화그림에서도, 10년째 고심해온 닥죽그림에서도 늘 바닥에 고여 있다. 1981년 마지막 수상자를 낸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았던 ‘토착별곡’(1981)부터다. 양지의 토담 곁에 아이들이 잠자리를 잡는 장면을 담아낸 그 그림부터 지금껏 말이다. “소재는 항상 한국적이지만 기법으로는 마음대로 즐길 수 있게 됐다. 어린아이가 하고 싶은대로 다하는 천진난만한 그림처럼 말이다. 50년이 걸렸다.”

신양섭 화백이 서울 종로구 노화랑에 건 자신의 작품 ‘순백을 찾아’(2019) 앞에 섰다. 50년 화업을 이어온 화백의 키워드는 단순과 간결이다. “결국 그림은 시 같은 형태여야 할 것”이라며 “화가가 공간을 다 채우는 건 과격한 짓”이라고 말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화단에선 신 화백을 가리켜 ‘가려진 작가’라고 하는가 보다. 평생 개인전이라곤 7번뿐이었다니 그럴 만도 하다. 왜 그렇게 안 나선 건가. “남에게 내놓을 땐 완벽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화가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내 혼을 담는 거 아닌가.” 그 혼을 뽑아내는 작업이 아직도 하루 15시간씩이다. 서울 서초구 염곡동, 집에 붙은 작업실에 틀어박혀 절정의 순백을 찾아내는 그 일 말이다. 전시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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