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득 칼럼]가덕도 도시어부들의 헛다리

  • 등록 2021-03-05 오전 6:00:00

    수정 2021-03-05 오전 6:00:00

목청 테스트를 받는 기분이어서 쓰고 싶지 않았다. 노래자랑 무대에서 여러 사람이 앞서 부른 곡을 “내 노래도 잘 들어달라”며 사정하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다루지 않으려 했다. 그렇지만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도 모자라 일을 저지른 이들이 미안해 하기는 커녕 희희낙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감정을 추스릴 수 없어 쓰기로 했다.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 지난달 26일 국회를 통과하기 전까지 벌어진 일들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터라 다시 언급할 필요도 없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물론 들러리 담합에 나선 야당까지 ‘가덕도’ 세 글자를 기도문 외우듯 입에 달고 다니고, 천지가 개벽을 할 것처럼 떠벌여댄 ‘바람잡기’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박또박 세금을 내고 사는 납세자의 한 사람으로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두고두고 따지고 싶은 것은 하나둘이 아니다.

“가덕도신공항이 부산 시민의 염원이라고 이유를 댔지만 모든 시민이 이를 원하나? 그렇다면 무엇으로 증명하나? 한 해 나라 살림살이의 5%와 맞먹는 28조 6000억원(국토교통부 추산)의 혈세를 퍼부어야 할 이 공항 건설이 해당 지역 경제를 위한다는 이유 하나로 정당한 절차를 몽땅 건너뛴 채 ‘뚝딱’ 결론만 나면 그만인가? 나머지 대다수 국민은 ‘봉’인가? 4월 부산 시장 선거를 겨냥해 밀어붙인 ‘낚싯밥’ 냄새가 진동하는데 왜 공항이 성추행 추문으로 물러난 전임 시장의 후임을 뽑는 선거에 미끼가 돼야 하나? 안전성· 경제성 등의 문제는 물론이고 법률 위반 소지만도 30곳이 족히 넘는다는 이 공항이 과연 건설 과정은 순탄하고 관계자들은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자신하나? 부산 시민들은 공항만 약속하면 눈 ‘딱’감고 표를 줄 것이라고 보나?”

어지러운 감정을 달래줄 답은 여론 조사 결과에서 먼저 나왔다. 리얼미터가 1일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에 대해 물은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53.6%는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놀라운 것은 공항만 들어서면 새로운 세상을 맞게 될 것이라고 떠들어댄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도 “잘못된 일”이라는 응답이 54.0%에 달한 반면 “잘된 일”이라는 답은 38.5%에 그쳤다. 몰표를 기대할 여당 입장에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을 결과다. 조사 표본이 500명에 불과해 지역 민심 전체를 대변한다고는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특별법 통과 직후 조사에서 이런 반응이 나왔다는 사실은 뜻하는 바가 결코 작지 않다. 눈앞의 지역이기주의보다 나라의 미래와 살림살이라는 장기적 안목에서 사안을 판단하는 시민이 더 많음을 의미한다고 봐야 해서다.

가덕도신공항은 관료들의 기회, 보신주의와 여당의 매표 계산, 야당의 야합이 맞물린 21세기판 초대형 포퓰리즘 공세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대표가 “가벼운 마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게 됐다”고 말했지만 기대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유권자들의 양식을 너무 가볍게 본 것 같아서다. 유권자들도 이제는 포퓰리즘의 중독성과 해악, 그리고 미사여구로 포장한 공수표의 본질을 가려낼 줄 안다. 1000조원을 바라보는 나랏빚과 한여름 수은주처럼 치솟기만 하는 국가채무비율이 미래세대의 앞날에 어떤 악영향을 줄지를 그들도 걱정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유권자들의 냉정한 심판과 현명한 선택이 투표 결과에 선명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현재로선 작지 않다. 대한민국이 퍼주기 중독에 걸린 나라들과는 아직 다르다는 것을 4·7선거는 보여줄 수 있다. 부산 시민의 예리한 판단이 가덕도에 모인 도시어부들의 황당무계한 미끼 앞에서 흐려지지 않기를 기대한다. 정확하고도 올바른 한 표만이 포퓰리즘을 뿌리뽑고 나라 건강을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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