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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전문' 이은의 변호사 "가해자 사망하면 수사 중단? 기준 정립 필요"

성범죄 피의자 사망에도 "추가 수사" 요청 논란
"절박함 담긴 피해자들 메시지, 공유 가치 충분해"
"피해 있는데 수사 중단 왜?"…2차 피해 우려도
법조계엔 "기득권 내려놓고 사람 아닌 사건 봐야" 호소
삼성 재직 당시 회사 상대 '성희롱' 승소 경험도...
  • 등록 2021-06-25 오전 6:00:00

    수정 2021-06-25 오전 6:00:00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최근 자신이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로펌)의 초임 변호사를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한 변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처음 사건이 알려졌을 당시 법조계 내 성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알린 사건으로 주목받는가 했지만, 피의자가 사망에 이르자 이내 시선은 피해자 측 변호사로 향했다. 공론화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가해졌으며, 피의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해당 변호사는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물러서지 않고 피의자 사망에 의한 ‘공소권 없음’ 처분과 별개로 수사는 계속돼야 하며 그 결과 역시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파장은 더욱 커졌다.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난 논란의 당사자 이은의 변호사는 오히려 담담하게 “그냥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다만 성범죄 사건들의 공론화 가치, 피의자 사망에도 수사 및 결과 발표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 등을 설명하는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피해자들을 향한 우리 사회의 그릇된 시선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삼성맨’ 시절 성희롱을 당한 뒤 소송으로 맞서 싸운 피해자이자, 이후 변호사로 개업해 배우 곽현화 씨와 모델 양예원 씨, 유도선수 신유용 씨, 서지현 검사 그리고 가수 박유천 성범죄 피해자에 이어 이번 로펌 사건까지 여러 ‘미투(Me Too·성범죄 고발 운동)’ 관련 사건을 줄곧 맡아 온 그는 우선 “사람이 아닌 사건에 주목해 달라”며 본질이 오염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의 절박함과 간절함으로 이뤄진 공론화 과정에서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또 어떻게 처리됐는지 알리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며, 공론화는 물론 사건 처리 기준을 세우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성범죄 전문’ 이은의 변호사가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절박한 목소리 외면·왜곡…또 다른 범죄로”

이 변호사는 “그간 사건들은 모두 공론화된 상황에서 다른 변호인들이 꺼려해 맡은 것일 뿐 내가 공론화한 것은 아니다”라며 일각의 오해를 해명한 뒤, 다만 “피해자들이 절박하고 간절하게 공론화를 해야만 했던 이유, 이들이 전달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등 공론화 과정을 수습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공론화가 단지 ‘피의자 죽어라’라는 의미겠나. 사건이 사회에서 당당하게 처리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의 표출이자, 유사한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나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어’라는 공감의 표현”이라며 “사건이 왜 발생했는지, 어떻게 처리됐는지 공유할 가치가 충분하며, 나는 피해자들의 공론화 의지를 존중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 변호사는 양예원 씨 사건을 들어, 성범죄 공론화에 대한 사회의 막연한 ‘삐딱한 시선’을 경계했다. 이 변호사는 “사건이 벌어진 당시 양예원 씨는 미성년자와 별반 다를 바 없는 21살이었고, 사실상 법적으로 무방비 상태인 아르바이트에 나선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회는 공론화 이후 ‘너가 자초한 일’이라는 식으로 조리돌림 했다”며 “이후 ‘n번방’ 사건이 발생하자 사회는 공분했는데, n번방 사건이 양예원 씨 사건과 무엇이 다른지 되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양예원 씨 사건에 제대로 대응했다면, n번방 사건에서도 최소한 ‘법이, 양형이 왜 이러냐’라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피해 있는데 왜 수사 중단? 법의 실질적 작동 고민해야”

특히 이 변호사는 “지금 이 시점에서 법조계는 성범죄 피의자 사망 시 어떻게 수사를 마무리짓고 그 결과를 알릴지 기준을 세우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나면 그 사건은 수사하면 안되고, 그 수사 결과를 피해자에게 알려 줘선 안된다는 법 조항이 어디 있는가. 실제로 피의자가 사망한 살인 사건이나 피의자 특정이 쉽지 않은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수사를 중단하지 않고 마무리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유독 성범죄는 곧장 수사 중단한다”며 “피해자가 있는데 최소한 범죄 피해가 맞는지 여부를 알려 달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렇다 할 결론 없이 수사를 중단할 경우 앞선 양예원 씨 사건이나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과 같이 오히려 피해 사실이 왜곡되는 등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이번 로펌 사건과 관련해서는 법조계에 “기득권을 내려놓고 대다수 변호사들이 열악한 수습·초임 시절을 거치며 성범죄에 노출되는지, 사람이 아닌 사건을 들여다봐 달라”고 호소했다. 이 변호사는 “그동안 법조계 내부에서 성범죄 사건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처리해 왔는지 피해자들이 누구보다 잘 안다. 나도 숱하게 당해 봤다”며 “이번 사건을 맡으면서 2021년, 2022년의 젊고 여린 이은의들에게 ‘경찰 가서 신고하자, 대한변호사협회에 문제 제기하자’는 말을 더이상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토로했다.

이 변호사가 성범죄 피해자들과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은 변호사가 되기 전 실제 피해자로서 소송을 경험해 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삼성전기에서 일했던 그는 당시 상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한 뒤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 승소한 경험이 있다. 이 변호사는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해하며 현재의 문제와 싸워야 했던 당시, 변호사로부터 필요로 했던 도움들을 떠올려 보는 것은 현재 같은 처지에 놓인 피해자들과 공감하고 사건을 풀어나가는 동력이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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