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쇼크 독트린에 휘둘리지 말라

이종우 이코노미스트
  • 등록 2020-02-03 오전 5:00:00

    수정 2020-02-03 오전 5:00:00

쇼크가 발생했을 때 이를 이용해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선동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걸 ‘쇼크 독트린’(Shock Doctrine)이라 한다. 2008년 캐나다의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이 만든 개념이다.

쇼크 요법은 세 단계로 진행된다. 첫 번째는 전쟁이나 질병이 퍼져 사람들의 판단력과 이해능력이 약해졌을 때 이를 장악해 어떤 행동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원하는 형태의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한 행동에 나선다. 이라크 전쟁이 끝난 직후 파견된 미국의 경제 고문단이 완전 자유무역, 15%의 낮은 세금, 축소된 정부 같은 정책을 시행한 게 대표적인 예다. 마지막 단계는 저항하는 자에 대해 물리적 충격을 가하는 것이다. 신체적 폭력은 물론 해고를 통해 명줄을 끊어 놓는 방안까지 다양하다. 이 단계가 지나면 쇼크에 의한 장악이 완성된다.

쇼크 요법은 나라나 상황을 가리지 않는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뉴올리언스를 할퀴고 지나갔을 때 공립학교 시스템이 민간에 넘어갔다. 수해가 나자 완전한 복구보다 학교를 팔아먹는 데 열심이더니 결국 123개였던 공립학교가 4개밖에 남지 않았다.

동남아에 쓰나미(지진해일)가 닥쳤을 때 외국 투자자들이 리조트를 건설하기 위해 해안의 땅을 싼값에 사들인 것도 비슷한 예다. 아예 한 나라를 통째로 들어먹은 경우도 있다. 1970년대 칠레의 피노체트는 정권을 잡은 후 시카고학파의 거두 프리드먼을 경제 자문역에 임명했다. 쿠데타와 인플레이션으로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틈을 타 세금 감면, 서비스 민영화, 사회지출 삭감, 탈규제 등을 시행했다. 학교를 내다 팔아 교육을 황폐화시킬 정도였다. 빈부격차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사람들은 가난을 숙명처럼 여기게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져 사람들이 불안해하자 무책임한 말이 난무하고 있다. 야당의 한 최고위원이 중국인의 입국을 금지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사태가 발생한 이후 입국한 중국인 관광객을 송환 조치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청와대 청원이 수십만에 달하는 걸 보고 이에 편승한 것이다. 언론도 여기에 동참했다. 질병의 이름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해야 하느냐 우한폐렴으로 해야 하느냐를 놓고 논쟁을 벌이더니, 우한에서 귀국한 교민들을 천안 대신 진천, 아산에 격리 수용하는 걸 놓고도 시비를 걸었다. 천안이 여당 우세지역이어서 이를 피해 야당 우세지역으로 장소를 바꿨다는 것이다.

만약 한국 정부가 중국인에 대해 전면 입국금지 조처를 내렸다고 가정해 보자. 중국 역시 우리나라에 비슷한 형태의 조치를 취할 거고 그러면 중국과 관계가 엉망이 된다. 이웃이 어려울 때 외면했다는 중국인들의 혐한 심리까지 작동해 원상회복에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피해 규모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다. 질병에 대한 공포가 이해는 가지만 우리가 이 상황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공포는 많은 경우 목적을 위해 이용된다. 미국의 환경운동가 중 일부는 ‘비행기가 원자력 발전소를 들이받을 수도 있지 않나. 그러면 그 지역은 쑥밭이 된다’ 고 주장했다.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희박한 가능성을 동원한 것이다. 가끔 과학자도 역할을 한다. 과거에 신종 독감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독감이 4억 명에 이르는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고 거기에 치사율 70%를 곱하면 당신 가족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상상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기술의 발달로 공포가 전달되는 시간이 짧아진 대신 위력은 커졌다. 9.11 테러 당시 비행기에 부딪혀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방송됐다. 걸프전에서는 전쟁 중인 군인의 등 뒤까지 카메라가 들어갔다. 공포가 여과 없이 시청자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그만큼 공포를 통한 통치와 조작도 쉬워졌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자마자 각종 가짜 뉴스가 난무하고 있다. 정치와 언론에서는 이런 상황을 무책임하게 이용한다. 정치인은 표를 얻기 위해서 그리고 언론은 클릭수를 높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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