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봄향 가득한 남도에서 ‘문향’에 빠지다

소설 속 배경 찾아 떠난 전남 장흥 여행
장흥 문학의 산실 ‘회진면’
이청준, 한승원 등 이름난 문장가 나고 자라
  • 등록 2020-02-21 오전 6:00:00

    수정 2020-02-21 오전 6:00:00

이청준한승원문학길 1코스인 한승원소설문학길. 전남 장흥군 회진면 덕산리에 있는 회령진성에서 해산문학비까지 이어진 약 7km의 코스다.


[전남 장흥=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이번 여행지는 해남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의 전남 장흥이다. 바다를 끼고 있으면서도 산세가 수려하고, 볼거리·먹을거리·즐길거리가 넘치는 고장이다. 일 년 내내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지만, 조심해야 할 것도 있다. 이곳에서는 절대 글 자랑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가 있다. 예부터 장흥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시인 묵객들이 나고 자란 고장이어서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행 가사 ‘관서별곡’을 지은 백광홍(1522~1556)과 현대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이청준(1939~2008), 한승원(1939~), 송기숙(1935~) 등 당대의 문장가가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등단한 작가만 무려 100명을 넘는다. 글 자랑했다가는 망신당하기 십상이라는 말이다. 장흥을 문향(文鄕)이라 이르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천관문학관 앞에 핀 매화


◇장흥 문학의 산실 ‘회진포구’

장흥 문학 여행길의 시작점은 천관문학관이다. 매화향 가득 품은 천관문학관에서는 장흥에서 나고 자란 문장가는 누군지, 그에게 문학적 영감을 제공한 무대는 또 어딘지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다. 문학관 위쪽의 문탑과 문학공원도 빠지지 않고 들러야 한다. 문탑 밑에는 구상, 박완서 등 작가들의 친필 원고 50여 점과 연보 등이 캡슐에 쌓여 묻혀 있다. 문탑 아래쪽은 천관산문학공원이다. 친필 원고에 적힌 글들을 50여 개 문학비에 각각 세워 놓았다.

문학관을 나와 회진포구로 향한다. 회진은 문인의 땅이자, 장흥 문학의 산실이다. 요즘 세대에게 잘 알려진 소설가 한강의 부친인 한승원 작가와 ‘당신들의 천국’ ‘눈길’ 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이청준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이청준 생가


회진포구에서 고개 하나를 넘으면 이청준 생가가 있는 진목마을이다. 그의 생가는 방 3개와 툇마루, 부엌을 갖춘 일자형 기와집이다. 이청준의 자전적 소설 ‘눈길’의 배경이기도 하다. 이 집은 소설 속 주인공(이청준)이 고등학교 1학년 때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간다. 어머니는 집을 떠나 있던 아들이 사실을 알면 마음 아파 할까봐 집주인에게 부탁해 팔린 집을 빌려 하룻밤 아들과 보낸 후, 눈 덮인 새벽길을 걸어 배웅했다. ‘눈길’은 바로 이 참담한 이른 아침의 기억이 모태가 된 작품이다.

이청준 묘지 앞 기념비


그의 묘는 진목마을에서 약 2.5km 떨어진 곳에 ‘이청준 문학자리’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그의 부모를 모신 봉분과 장차 부인이 쉴 자리도 함께 마련해 두었다. 묘소 앞으로 넓은 바닥 돌에 작품 속 배경을 직접 그린 문학지도와 작가의 초상, 그리고 ‘해변 아리랑’의 한 대목이 새겨진 직사각형 돌기둥, 작가의 호 ‘미백(未白)’을 새긴 바위가 있다. 묘소 앞 ‘갯나들’은 어머니가 아들에게 싸 보낼 게를 잡던 곳. 드넓은 들판으로 변한 지금은 청보리가 봄바람에 살랑거린다.

선학동마을 앞 영화 ‘천년학’ 촬영 세트장


인근의 선학동마을은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 촬영지로 유명하다. ‘천년학’의 원작은 이청준의 단편 ‘선학동 나그네’로, 소리꾼 유봉 밑에서 자란 동호와 송화의 아픈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선학동은 소설의 실제 무대로 원래 이름은 산저마을인데, 영화 ‘천년학’ 이후 선학동으로 바뀌었다.

한승원문학산책로


◇ 장흥의 산과 바다, 문학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다

한승원의 생가는 신상마을에 있다. 한승원의 흔적과 처음 마주하는 곳은 넓바위 포구다. 천관산과 우산도, 금당도와 고흥반도가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이 포구는 한승원 바다문학의 현장이다. 신덕마을 주민에 의해 ‘한승원 문학 현장비’가 세워졌다. 그의 대표적인 바다 소설 ‘갈매기’ ‘폐촌’ ‘그 바다 끓며 넘치며’ ‘낙지같은 여자’ ‘우산도’ ‘동학제’ ‘해변의 길손’ ‘갯비나리’ 등의 이야기가 이곳을 무대로 해서 쓰여졌다. 그는 ‘내 소설 8할은 고향 바닷바람에 의해서 탄생한 것이다’라고 술회했다.

생가로 가는 길에 ‘앞메잔등’을 만난다. 마을 앞산 고개를 뜻한다. ‘앞산’을 의미하는 앞메와 ‘고개’를 뜻하는 잔등이 더해진 말이다. 중편 ‘폐촌’에서 겨울에 김을 가득 담은 구럭을 짊어진 사람들이 헐떡거리며 넘은 고개로 나온다. 고개를 넘어 신상 버스 정류장 건너편 신상마을로 들어서면 한승원 생가가 나온다. 어느 시골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자, 전형적인 농가다. 그런데도 특별해 보이는 것은 남해 특유의 구성진 언어가 살아 있는 그의 소설이 이곳에서 태동해서다.

한승원 문학 현정비


신상마을에서 덕산마을로 이어지는 길에는 ‘한재’라는 고개가 있다. 한재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큰재산과 한재산 사이의 고개다. 단편 ‘앞산도 첩첩하고’, 장편 ‘동학제’, ‘그 바다 끓며 넘치며’에서 한재를 넘는 애달픈 사연이 나온다. 정상에 서면 덕산마을과 그 너머로 득량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 동쪽의 신상리·신덕리·대리 주민들이 회진으로 장 보러 가고, 산 서쪽의 덕산리 아이들이 대리에 있는 학교(현 명덕초등학교)에 다닐 때 넘어다녔다. 한재 정상에 서면 신상마을과 그 너머로 득량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재공원은 한재 정상 주변 10만㎡에 이르는 할미꽃 군락지다. 단일 규모로 전국 최대다. 해마다 3월 중순부터 4월 말까지 자줏빛 꽃망울을 틔운다.

한재에서 덕산마을까지는 내리막길이다. 다시 회진읍을 지나면 한승원문학길 종점인 회령포다.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이 병선 12척을 인수해 출정한 곳이자, 명량해전 출정지다. 회진리 마을 뒷산에 회령진성이 있다. 조선 성종 때 축조한 수군진으로,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서 병선 12척을 수리했다고 한다. 현재 남은 성벽은 616m로, 동벽은 벼랑 위에 쌓았다고 하나 모두 없어지고 동문 터만 남았다. 회령진성 정상에서 너른 들판과 그 너머 천관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순신의 출정식을 알리는 회령진성의 조형물.


◇여행메모

△가는 길=서울에서 장흥 회진까지는 대략 400km 거리다. 정체가 없어도 5시간은 족히 걸린다.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장흥까지 하루 7회 고속버스를 운행한다. 장흥읍내에서 회진면까지는 시내버스(농어촌버스)를 이용해야 하지만, 차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나주역(혹은 광주송정역)까지 고속철(KTX)로 이동해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편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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