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가난하나 따뜻한 어울림 `장석조네 사람들`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3월27일까지 공연
  • 등록 2011-03-18 오전 11:00:54

    수정 2011-03-18 오전 11:00:54

▲ 연극 `장석조네 사람들`의 한 장면(사진=드림플레이)
[이데일리 SPN 김용운 기자] 지금은 뉴타운이 되어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서울 성북구 길음동. 그러나 이곳은 불과 1990년대 후반까지 인근 삼양동, 미아동과 함께 서울 강북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다. 미아리 고개를 넘으면 바로 보였던 이 동네는 여느 서울의 달동네처럼 이 사회의 주류가 아닌 비주류, 소외된 이들이 서로 담쟁이처럼 엉켜 만든 제2의 고향이었다.

1963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난 소설가 김소진은 1970년대 성북구 길음동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서울대 영문과에 입학한 그는 영문학도보다는 성실한 국문학도에 가까웠다. 유년시절 전국 팔도에서 모여든 길음동 달동네 이웃들에게 들었던 각 지역의 방언들을 활자화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이후 신문사 기자로 사회생활을 출발한 그는 1991년 단편 쥐잡기를 통해 신춘문예를 통과했고 작가의 길을 걷는다. 그는 1990년대 이른바 운동권 후일담 소설과 포스트모더니즘에 기반을 둔 소설들의 범람 속에서 유년시절, 스스로 겪었던 서민의 가난하지만 낙관적인 삶에 뿌리를 둔 소설들을 발표하며 90년대 문단에 촉망받는 작가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소설은 만개하기 전 꽃봉오리처럼 미완의 아름다움만을 남긴 채 더 피어나지 못했다. 1997년 3월 암종증 진단을 받고 그해 4월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연극 `장석조네 사람들`은 소설가 김소진의 동명 연작소설을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교 김재엽 교수가 각색하고 연출해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지난 2009년 혜화동1번지의 소극장에서 초연된 `장석조네 사람들`은 연극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3시간에 가까운 장시간 무대로 화제가 됐다. 연작 `장석조네 사람들`에 있는 단편을 묶어 일종의 옴니버스 형식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덕분에 `장석조네 사람들`은 대학로의 `작지만 큰 공연`이란 평가를 받았다.

`장석조네 사람들`은 이후 2010 서울문화재단 대학로 문화활성화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올해 1월 남산예술센터에서 3주간 중극장 무대에 올랐고 올봄,`2011 한국공연예술센터 차세대 공연예술가 시리즈 선정작` 자격으로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르게 됐다. 소극장 공연이 대학로에서 손꼽히는 큰 극장으로 무대를 옮겨 관객을 만나게 된 셈이다.

한층 넓어진 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나게 된 `장석조네 사람들`의 매력은 무엇보다 배우들의 육성으로 생명을 얻은 김소진 소설 특유의 사투리의 맛이다. 사채업을 하는 장석조의 집의 세입자들이 펼치는 일곱 가지 에피소드에서 표준말 역시 일개 서울지역 사투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북 출신 어른들의 사투리나 전라도 출신 젊은 청년의 사투리, 경상도, 충청도 등등 소설 속 글자로 읽었던 사투리들이 얼마나 청각적이고 서정적인 감흥을 주는지 `장석조네 사람들`은 잘 보여준다.

또한 가난한 이들의 소소한 위선과 그악함을 꼬집으면서도 끝내 그들의 가슴에 지닌 온기에 주목했던 김소진의 소설 속 감동은 이 연극을 통해 무대 위 배우들의 몸짓과 표정으로도 전해져 온다. 그만큼 소설과 연극의 행복한 만남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때문에 관객들 사이에서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는 긴 연극임에도 그 시간이 지루하거나 힘들다는 불만이 나오는 경우가 드물었다.

무엇보다 `장석조네 사람들`은 우리가 높이 솟아 있는 뉴타운의 아파트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결코 경험하지 못할 어울림의 정서가 담겨져 있다. 가난 때문에 불편하고 가난 때문에 삶의 일정 부분을 불구로 지내야 했던 70년대 달동네 서민들의 모습은 그 시대 우리 사회 대부분의 자화상이다.

다시 그런 가난을 미화할 필요는 없겠지만 가난이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을 만들고, 사람과 사람을 어울리게 했던 모습을 `장석조네 사람들`은 7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자연스럽게 상기시켜준다. 그 기억 속에 우리가 잃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하게 한다. 저도 모르게 콧등을 훔치고 눈을 깜박이면서 말이다. 17일부터 27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티켓가격 3만원~2만원. 문의(02)745-4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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