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공연] '탈출코끼리' 소식에 120석 꽉채운 관객

- 현장스케치
연극 '그게 아닌데'
실용적인 무대·통렬한 풍자
작가의식, 탁월한 해석 연출 만나 시너지
  • 등록 2013-06-24 오전 8:21:51

    수정 2013-06-24 오전 10:03:57

연극 ‘그게 아닌데’의 한 장면. 배우 윤상화·유성주·유재명·문경희(왼쪽부터) 등의 밀도 있는 앙상블이 치밀한 연출을 만나 깊으면서도 깔끔한 호흡을 만들어냈다(사진=코르코르디움).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공연시작이 늦어지고 있다. 이유는 ‘관객배치’. 밀려든 관객들을 규모 있게 앉히려는 극단 측이 분주하다. 120석 남짓 지하 소극장이 꽉찼다. 계단과 무대 앞까지 보조석으로 채웠다. 10여분이 지났다.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작품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얘기다. 게다가 32년 만에 중부지방부터 장마가 시작됐다는 날 아닌가. “이 정도쯤은 뭐. 궃은 비도 마다않고 왔는데….” 관객들의 표정이 곧 대사다.

기다리는 동안 윤우영 심사위원과 빈 무대를 바라보며 저렴한 장치와 세트에 대해 얘기했다. 탁자 하나와 의자 몇 개가 전부. 오해는 곤란하다. 부실하다는 게 아니다. 실용적이란 얘기다. 연극 특히 창작극이 당면한 ‘지독한 가난’이 자연스럽게 따라나왔다. 그새 객석이 정리됐다. 불 꺼지기 직전 고개를 돌려 구석에 비집고 앉은 김광보 연출을 잠시 봤다.

무대는 동물원을 탈출한 코끼리 다섯 마리 때문에 어수선하다. 문제는 그중 두 마리가 한 대선후보의 유세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데 있었다. 조련사가 불려왔다. “왜 코끼리를 풀어준 겁니까?” 정신과 의사, 형사, 어머니가 차례로 들이댄 질문에 그의 대답은 한결같다. “풀어준 게 아닌데. 비둘기가 날자 거위가 꽥꽥대고 겁먹은 코끼리가 뛰어간 건데….”

극은 조련사를 놓고 각자의 생각을 끊임없이 설파하는 과정이다. 그들의 머리에 조련사는 없다. 입장만 있을 뿐이다. 의사에게 조련사는 ‘코끼리를 사랑한 성도착자’로, 형사에겐 ‘선거판 배후조작 인물’로 어머니에겐 ‘모든 속박을 풀어내려는 자유인’으로만 존재한다. ‘아닌데…’로 일관하던 조련사는 결국 항변을 포기한 채 코끼리가 되기로 한다.

극이 끝나고 배우들이 인사를 하러 나왔다. 유독 왜소해 눈에 더 띄는 조련사 윤상화가 가쁜 숨을 몰아쉰다. 그의 연기력은 차라리 타고났다고 해야 한다.

‘코끼리의 음모’는 한바탕 통렬한 풍자다.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만 있다. ‘코끼리가 된 사람’과 ‘코끼리로 내모는 사람’. 집단논리로 무장한 이들에게 대화와 소통을 차단당한 사람은 결국 코끼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저마다 다른 육을 입고 저마다 다른 맥락에서 살기에 소통은 애초에 불가능했다”는 이미경 작가의 판단이 연출의 덕을 제대로 봤다.

공연장 밖. 빗소리가 묻히고 있다. 코끼리가 되지 못한 이들이 허공에 날리는 소음까지 막진 못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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