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커다란 변화는 일터에서 나타나고 있다. 직장이 바이러스 확산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 보니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모여서 일을 한다는 행위 자체가 커다란 위험을 수반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아파도 참고 나오고, 일이 없어도 나오는 행태들이 이제 그럴 필요도, 그래서도 안 되는 전혀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었다.
코로나 사태 반년…일하는 문화 달라져
약 반년 동안 진행된 이 사태를 지나오면서 얼굴을 맞대고 일을 하지 않아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기업들이 향후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도 초미의 관심사다. 비대면, 원격 근무환경에 더해 심지어는 재택근무 중 직원이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업무 성과는 어떠한지 파악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솔루션까지 등장했다. 앞으로 근무형태에서의 생산성 문제와 성과 측정에 대한 기준 마련은 새로운 문제로 등장했다. 특정 직무에 반드시 ‘그 사람’이 필요한가, 그렇지 않다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피어나고 있다.
지옥 같은 7말 8초 바캉스 시즌이라는 말도 점점 사라져 갈 것이고 하루 또는 이틀 단위로 휴가를 쪼개서 가까운 교외에 다녀오거나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집콕이 대세가 될 것이다. 휴가가 일상에 스며든다는 뜻이고 일상이 휴가화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탄력적인 근무는 탄력적인 휴식과 함께 보편화 할 것이고 일하는 시즌, 쉬는 시즌이 뚜렷이 나뉘던 지금까지와 달리 둘 간의 경계가 희미해질 것으로 보인다.
|
이는 자연히 편안하게 휴가를 사용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이다. 필자가 인사혁신처장으로 공직에 몸담았던 시기에 주당 40시간의 범위 내에서 근무시간을 자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한 ‘자기주도 근무시간제’를 확대 도입했다. 일별 근무시간을 자율 설계하는 방식으로, 잘 활용하면 하루에 12시간씩 3일을 근무하고 나머지 하루는 4시간만 근무하는 주 3.5일 근무가 가능해진다. 또 해당 연도에 쓰지 않은 연가를 최대 3년까지 이월해 일시에 쓸 수 있도록 하는 연가저축제를 도입해 최대 40여 일간의 휴가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등 휴가규정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기도 했다.
일상의 휴가화에 따른 경제적 순기능도 기대된다. 휴가를 소진하게 되면 자연히 휴가 보상비 등의 재원을 절감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대체인력 채용에 활용 한다면 일자리는 확대 될 것이다. 자연스레 ‘일자리 셰어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뿐인가. 충분한 휴식을 통한 일과 삶의 균형은 생산성 향상을 가져오고 소비를 촉진해 내수 진작을 기대 할 수 있는 등 추가적인 경제효과까지 유발하는 ‘휴가의 경제학’이다. 이러한 문화는 이미 우리 삶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이제 휴가 문화에 대한 새로운 진화가 일상의 삶을 바꿀 것이다.
고용의 세계화와 경쟁력
추세를 정확히 예측한다 해도 변화의 폭이나 속도를 오판하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일과 휴식의 풍속도는 더 빨리 바뀔 것이다. 항공, 관광업계가 이미 휘청거리고 있다. 의식주 등 다른 분야도 폭풍전야다. 산업화 시대의 일과 휴식 개념에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것을 전제로 발 빠르게 생산, 인사 관리, 노무, 투자 구조를 조정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을 하는 기성세대의 인식이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느냐다. 회사를 운영하는 기업가의 마인드가 직원들이 눈에 보이는 곳에 앉아 있어야만 일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오늘에 머물러 있거나 제도를 만드는 공직자가 철 지난 평생고용의 신화에 집착하면 생존적 대응은 난망하다. 일자리가 없어지는데, 고용의 유연성은 도리어 철벽을 만든다고 하니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한 일이 될까. 코로나19 사태로 강요되는 변화는 잠시 몸을 사리면 지나가는 파도가 아니다. 그동안 구축한 모든 질서를 쓸어버릴 쓰나미다. 우리 삶의 터전인 일, 일자리, 고용시장, 노동환경, 휴식의 질에 전반적인 새로운 질서가 시작되고 있다. 어떤 선택과 행동이 필요한가.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다가올 때는 몸을 가볍게 하고 그 물결에 몸을 맡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