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생생확대경]증권사는 안된다는 금융당국

증권사 CP·ABCP 매입대상서 제외
한은 무제한 RP 매입, 신규 유동성 공급효과 없어
단기자금시장 경색…4월 10조원 PF ABCP 만기 어떻게?
  • 등록 2020-03-31 오전 4:50:00

    수정 2020-04-01 오후 5:20:58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금융당국이 지금 증권사의 유동성 리스크가 탐욕스러운 경영 때문이라고 인식한다면 잘못된 게 분명합니다. 이 논리대로면 기업어음(CP)시장 경색도 코로나19가 아닌 증권사 탓이고, 자영업자가 망하는 것도 경영을 잘못한 자영업자 탓이겠죠.”

역대급 팬데믹에 정부가 42조원 규모의 과감한 금융지원을 발표했지만, 증권사들은 정작 유동성 공급 대상에서 배제됐다. 금융당국이 채권시장안정펀드 매입 대상은 물론 30일부터 가동하는 산업은행·기업은행 매입 CP에서도 증권사 발행 CP와 프로젝트 파이낸싱 자산유동화기업어음(PF ABCP)을 제외키로 하면서 증권업계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단 한국은행이 밝힌 3개월간 무제한 환매조건부채권(RP)매입을 보자. ‘한국형 양적완화’라고 설명하지만 사실 증권사들이 보유한 국고채, 통안채, 산금채 등은 이미 담보로 제공돼 신규 자금공급 효과가 거의 없다. 업계에선 이같은 무제한 RP 매입이 금융지주 등 은행권의 채안펀드·증안펀드 등 출자금 마련용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두번째로는 단기자금시장 경색. 분기말 효과로 16일 이후 지난 27일까지 머니마켓펀드(MMF)에서 빠져나간 돈은 무려 14조 452억원에 달한다. 30일 CP 91일물(A1 등급) 금리는 2.16%로 0.07%포인트 상승세를 이어갔다. 산업은행 등이 매입에 나섰지만, 2015년 3월이후 5년만에 최고치 경신이 사흘째 이어졌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단기자금시장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PF ABCP가 차환에 어려움을 겪으며, 증권사가 실제 매입확약을 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며 “정부의 CP 등 차환지원 프로그램이 대부분 일반기업 단기자금 차환에 집중되면서 4월에만 10조원 만기도래 PF ABCP 차환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핵심은 지금의 유동성 리스크가 펀더멘털 훼손 때문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전례 없는 코로나19로 자금시장 경색이 나타났고, 미국 연준(Fed)은 신용경색(Credit Crunch)을 막기 위해 무제한 양적완화, 회사채 매입 등 역대급 유동성 공급에 나서고 있다.

이 가운데 단기자금 조달·운용이 차입부채의 79%(2019년말 기준)에 달하는 증권사들의 유동성 리스크가 확대된 상태다. 일부 대형사는 발행어음을 찍어 조달에 나서고, 일부는 CP 발행 등으로 차환되지 않는 ABCP를 매입할 것이다. 4월 10조원을 비롯해 매달 수조원 규모의 ABCP가 별 문제없이 돌아간다면 다행이겠지만, 지금으로선 문제가 터질 소지가 크다. 신용평가사도, 크레딧 업계도 이 부분을 약한 연결고리로 지적한다. 이렇게 되면 결국 ABCP 투자자의 문제이자 금융시장의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이 커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리먼브러더스라는 미국 투자은행(IB) 파산에서 시작됐다.

증권사에게 국민 혈세가 들어간 돈을 무작정 투입하라는 게 아니다. 회사채, CP, 전단채 시장에서 주로 발행, 유통을 담당하는 증권사들이 유동성 경색을 겪으며 시장조성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금융당국이 구상한 시장안정 효과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일부 과도한 레버리지를 일으켜 능력 이상의 운용을 한 곳이 있다면, 그들을 타게팅해 핀셋 대응하면 된다.

CP시장 대책은 해외지수 급락에 증권사발 주가연계증권(ELS) 마진콜(추가 증거금 납부)로 한 차례 충격이 가해진 이후 나왔다. PF ABCP 역시 한 차례 시장 충격이 온 이후에야 팔을 걷어부칠 것인가.

일각에선 PF ABCP의 경우 대출 성격이 커 한정된 재원을 가진 금융당국이 지원대상으로 삼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 이후 증권사들이 기업금융(IB)의 일환으로 PF ABCP 신용보강에 나섰고, 이를 통해 시행사와 건설사들의 부담이 일정부분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증권사들이 금융기관으로서 역할을 했지만, 유동성 지원에선 배제된 채 증안펀드 출자만 3000억~5000억원씩 요구받는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금융당국의 유동성 지원책이 계속 증권사를 외면한다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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