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준혁은 26일 구단 보도자료를 통해 '후배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 본인과 팀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25일 선동열 감독과 구단에 은퇴 의사를 전했다"고 밝혔다.
1993년 데뷔 후 18년간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양준혁의 기록이 곧 '프로야구 기록'이라고 할 만큼 프로야구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야구팬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 '양신'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펼쳤는지 잘 보여준다.
대구상고-영남대를 거쳐 1993년 신인 1차지명으로 삼성에 입단한 양준혁은 1993년 4월 10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쌍방울과의 데뷔 첫 경기에서 6타수 3안타 2타점 1득점을 올리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결국 입단 첫 해 106경기에 출전, 타율 3할4푼1리 23홈런 90타점을 기록, 단숨에 프로야구를 정복했다. 프로 첫 해 타율, 출루율, 장타율 1위에 오르면서 입단 동기 이종범(당시 해태)을 제치고 신인왕까지 거머쥐었다.
이후 양준혁은 9년 연속 타율 3할(1993~2001), 역대 최다인 15번의 올스타전 출장, 골든글러브 8회 수상(1996~1998, 2001, 2003, 2004, 2006, 2007), 프로야구 최초 사이클링 안타 2회(1996, 2003), 16년 연속 세자릿수 안타(1993~2008)기록 등 성공시대를 활짝 열었다.
특히 양준혁은 각종 통산기록을 갈아치우며 진정한 '기록의 사나이'로 우뚝 섰다. 양준혁은 프로 18년 동안 2131경기에 출전하면서 통산 최다경기출장, 최다안타(2318개), 최다홈런(351개), 최다타점(1389점), 최다득점(1299점), 최다루타(3879개), 최다사사구(1380개) 등 도루를 제외한 거의 전 부문의 통산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09 5월 9일 대구 LG전에서 통산 341번째 홈런을 터뜨려 장종훈 현 한화 코치가 세웠던 통산 최다홈런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에 앞서 2005년 6월25일 문학 SK전에서 최다안타 기록을 뛰어넘은 뒤 내친 김에 2007년 6월 9일 잠실 두산전에선 대망의 2000안타 고지까지 정복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기록을 수립하면서 양준혁은 프로야구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기록의 사나이'라는 별명도 자연스럽게 그를 따랐다. 특히 양준혁의 경우 대학을 졸업하고 군복무까지 마친 뒤 24살의 늦은 나이로 프로에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그의 대기록들은 더욱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물론 그에게도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최고의 활약을 이어가던 1999년 갑작스런 해태로의 트레이드는 양준혁의 야구인생에서 큰 고비가 됐다. 곧이어 LG로의 이적까지, 양준혁에게 큰 풍파가 계속 찾아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선수협 파동의 주동자로 낙인찍히면서 FA 자격을 얻고도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양준혁은 4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전혀 녹슬지 않은 타격감을 자랑했다. 2009년까지 매 시즌 100경기 이상 활약했던 양준혁은 40대에 접어든 2009년 82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타율 3할2푼9리 11홈런 48타점을 기록하며 노장의 건재함을 보여줬다.
하지만 양준혁에게도 '세월의 무게'는 어쩔 수 없었다. 2010 시즌을 거듭하면서 후배들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 벤치신세로 전락했다. 거의 선발출전을 하지 못한 채 간간히 대타로 나설 뿐이었다.
통산 15번째 출전한 올스타전에서 스리런 홈런을 터뜨렸던 양준혁은 그 다음 날 후배들에게 길을 터줘야겠다고 결심하고 결국 은퇴를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올스타전에서 눈시울이 붉어졌던 그의 모습은 선수인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마음속 결심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 관련기사 ◀
☞'은퇴 결심' 양준혁 "시원섭섭...행복하고 즐거웠다"
☞'기록의 사나이' 양준혁, 올시즌 끝으로 18년 선수인생 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