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사이드의 2010시즌 성적은 10승10패. 두자릿수 승리를 거둔 투수와 재계약하지 않는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높은 평균자책점(5.34), 그리고 우리가 외국인 선수에게 기대하고 있는 압도적인 구위가 없다는 점은 결국 번사이드가 다시 한국 땅을 밟는데 걸림돌이 됐다.
지난해엔 공격력 강화를 위해 알드리지를 택했지만 올시즌엔 다시 투수로 선회했다. 그리고 선택을 받은 선수가 바로 벤 해켄이다.
여기서 의문 한가지. 평균 자책점이 높기는 했지만 그래도 10승 투수를 외면하고 데려오는 선수라면 뭔가 확실히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스카우팅 리포트만 놓고 보면 헤켄과 번사이드는 별반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그러나 결과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해켄은 `번사이드의 업그레이드 버전`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득점 지원이 부족했던 탓에 승수를 많이 쌓지는 못했지만 꾸준히 등판 간격을 지켜내며 나이트와 함께 든든한 원.투 펀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9번 등판 중 무려 19번이나 6회 이전에 강판된 번사이드에 비해 활용도가 크게 높은 투수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헤켄의 무엇이 성공적인 리그 적응을 이끌고 있는 것일까. 해답은 `낯설음`에 있다.
헤켄의 투구 유형은 번사이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투구폼에서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번사이드는 팔 스윙의 궤적을 크게 하기 보다는 짧고 빠르게 가져가는데 중점을 둔 투수다. 한국에서도 그런 유형은 찾아볼 수 있다.
윤석환 SBSESPN 해설위원은 "우리 좌완 투수들은 좌타자의 바깥쪽 공략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조금씩 팔 궤적을 옆으로 내리고 있는 추세다. 좌완 정통파를 찾기 힘든 이유"라며 "팔을 내리면 좌타자 몸쪽 승부는 힘들다. 자칫 가운데로 몰릴 가능성이 높아서다. 하지만 해켄은 좌타자 몸쪽 공략이 가능한 폼이다. 특히 무릎쪽 제구가 가능하기 때문에 구위 이상의 성적이 나오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타자들은 "공을 끝까지 보고 친다"고 하지만 실제 홈 플레이트 앞에서 판단하며 칠 수는 없다.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나는 순간 이미 타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때문에 투수의 팔 궤적은 승부의 매우 중요한 요소다. 헤켄이 우리 타자들이 쉽게 대해보지 못한 궤적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래서 더 큰 의미가 있다.
과연 헤켄이 이 낯설음을 언제까지 활용할 수 있을지, 또 우리 타자들이 언제쯤 적응력을 보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