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정책 대전환]"나이보단 능력"…정년 벽 허무는 기업들

평균연령 35.3세 휴넷 "정년·나이보다 능력이 앞서야"
맥도날드, 2000년대 초반 나이 차별 없앤 '열린채용'
생산가능 인구 감소, 60대 이상 시니어 핵심인력 수요 늘 듯
  • 등록 2020-01-09 오전 2:35:00

    수정 2020-01-09 오전 2:35:00

지난해 10월 진행된 휴넷 창립 20주년 행사 모습. 휴넷 제공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평생교육 전문업체 휴넷에 근무하는 한희정 수석(48·여)은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뜬금 없는 질문을 받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언론 보도를 통해 `휴넷 정년은 100년`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접한 친구가 놀란 표정으로 “너희 회사엔 정년이 없느냐”고 물었고 한 수석은 “아니, 100년이라니까”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한 수석은 명절 때마다 친정에 가족들이 모이면 동생들에게 취업 좀 시켜달라는 농담도 종종 듣는다고 한다. 지난 1999년 입사해 올해 근속 21년차를 맞는 한 수석은 “처음엔 대표가 정년 100세를 얘기했을 때 반신반의했다”면서 “20년을 근속하다 보니 정년 100세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고 꼭 100세가 아니어도 내가 일을 할 수 있다면 오래도록 일할 수 있는 회사라는 믿음이 생겨 그 만큼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말했다.

평균연령 35.3세 휴넷 “정년 100세”…능력 중심 일터로

서울 구로구 디지털로 휴넷 사옥 8층 818호실로 들어서면 벽면에 `휴넷의 정년은 100세`라고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그러나 정작 휴넷은 평균 연령이 35.3세로 젊은 조직이다. 최고경영자인 조영탁 대표를 제외하면 최고령 직원의 나이는 53세에 불과하다. 다른 어느 기업보다 젊은 조직인 휴넷이 선제적으로 “정년 100세”를 외친 건 나이를 떠나 능력 위주의 고용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조 대표는 “100세 시대에 정년과 나이보다는 일 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며 “개인 의지와 일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정년과 관계없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정년 100세의 진정한 의미”라고 설명했다. 휴넷이 100세 정년을 앞세운 데는 저출산 고령화와 평균수명 연장으로 더이상 기존 인력 구조 틀로는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인식도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장기근속자 연금제 도입…시니어 일자리 블루오션 노려

휴넷은 정년 100세 보장을 선언적 의미에서 그치지 않고 그에 걸맞은 사내 정책도 도입했다. 지난 2017년부터 장기근속자를 위한 연금제도인 직원행복기금 도입이 대표적이다. 매년 회사이익 일정액을 출연하고 그 출연금을 근속, 직책 등이 반영된 해피라이프 포인트 환산 기준에 따라 퇴직 이후라도 노년에 임직원들에게 연금형태로 지급하는 제도다. 휴넷 장기근속자들에게 회사의 이익 공유, 안정적 노후 및 행복한 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취지다. 근속 15년 이상자를 대상으로 하고 퇴직 이후 만 65세부터 기금을 수령할 수 있게 했다. 현재 직원 2명이 대상자로 선정돼 있다.

휴넷이 이처럼 정년 100세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직원 복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령화가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휴넷은 시니어 일자리 창출이라는 블루오션을 노리고 있다. 탤런트뱅크를 운영하며 고(高)스펙 시니어 전문가와 기업을 연결해주는 인재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시니어에게 일자리를 연결해주고 중소기업은 고급 인재 유치와 비용 절감을 할 수 있게 하는 쌍방향 윈윈 플랫폼이다. 기업이 필요에 따라 인재를 채용해 임시로 계약을 맺고 일을 맡기는 형태의 경제 방식인 긱 경제(Gig Economy)를 모티브로 했다. 예를 들어 품질관리 전문가가 없는 중소기업이 생산설비 체계 구축을 위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동안만 한시적으로 해당분야 전문가를 고용하는 형태다. 현재 1500여명이 활동 중이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54세다.

`할바생`원조 맥도날드 “300명 시니어크루 수시 채용”

패스트푸드점 맥도날드는 청소년과 청년 중심의 일자리에서 최근 시니어 인력이 유입되면서 이전보다 무게감이 있는 일터로 바뀌었다. 지난달 국내 최고령 크루(아르바이트생)인 임갑지(93세·남)씨의 은퇴는 사회적으로 크게 화제가 됐다. 90세가 넘는 고령의 `할바생(할아버지+알바생)`이 무려 17년간이나 한 일터를 지킨 것은 한국 사회에선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맥도날드가 시니어 인력 채용에 나선 건 2000년대 초반으로 비교적 빠른 편에 속한다. 학력, 나이, 성별, 장애 등에 차별을 두지 않는 열린 채용 방침에 맞춰 취업 사각지대에 놓인 시니어 인력에도 취업 기회를 준 것이다. 맥도날드는 지난 7년 간 845명의 시니어 크루를 채용했고 현재 55세 이상 시니어 크루가 300여명에 달한다. 맥도날드는 올해도 이런 기조를 이어가 매장 상황에 따라 수시로 시니어 크루를 채용한다는 방침이다. 맥도날드 관계자는 “시니어 크루는 고객이 식사를 하는 공간인 라비를 정리하는 업무를 주로 하지만, 개인 역량에 따라 레스토랑에 필요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면서 “시니어 크루들은 풍부한 경험과 성실한 근무 태도로 레스토랑에서 함께 근무하는 다른 크루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전문가들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향후 인구감소로 생산 가능 인구도 덩달아 줄어 60대 이상 시니어 인력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인력 수요가 주로 핵심인력에 집중되고 이들을 재고용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런 특성을 감안해 인위적으로 정년을 연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인 일감을 만들어 주는 게 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김중진 한국고용정보원 미래직업연구팀 연구위원은 “일본 기업은 최근 60세 이상이면 고용을 단절하고 이 인력을 다시 채용하는 형태를 선호하는데, 정년을 연장하는 것보다 인건비 부담은 적고 필요한 인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며 “국내 기업도 시니어 직원 능력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앞으로 고학력 전문직 시니어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만큼 이들에게 지속적인 일거리를 제공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임갑지(오른쪽) 맥도날드 크루가 지난달 8일 한국맥도날드 본사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부인 최정례씨와 입장하고 있다. 맥도날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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