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기술25]②‘머리로 먹는 약’ 디지털 치료제...약(藥)의 패러다임 바꾼다

난치병 해결책 제시하고 인지행동교정 치료 가능해져
임상·인허가 거치는 디지털 치료제 vs 공산품 웰니스
개발에 10년 3조 일반약 VS 디지털 치료제 5년 200억
  • 등록 2020-11-03 오전 5:00:00

    수정 2020-11-03 오전 5:00:00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우리는 치료 효과가 있는 게임을 개발하는 게 아닙니다.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치료제가 게임 형식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세계 최초 게임용 디지털 치료제를 만든 아킬리 인터렉티브의 최고경영자(CEO)에디 말투치(Eddie Martucci)가 한 디지털 치료제 관련 컨퍼런스에서 한 말입니다.(최윤섭의 디지털 헬스케어, 인용)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했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게임을 디지털 치료제의 하나로 인정해 질병을 고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또 하나의 신약’으로 불리는 디지털 치료제가 약의 개념을 뿌리채 흔들고 있습니다. 약을 먹거나 바르거나 주사하지 않고도 게임, 앱(응용프로그램), 가상현실(VR) 등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질병을 치료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규제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디지털 치료제를 ‘의학적 장애나 질병을 예방, 관리, 치료하기 위해 환자에게 근거 기반의 치료적 개입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당국에서 규정한 정식 명칭은 ‘디지털 치료기기’입니다. 다만 시장에서는 디지털 치료제(학문적 용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쓰고 있습니다.

디지털 치료기기를 만드는 웰트의 강성지 대표는 디지털 치료제를 ‘머리로 먹는 약’으로 소개합니다. 주로 디지털 치료제가 정신질환 치료 방법의 하나인 반복 훈련과 코칭·상담을 통해 환자 행동과 인지를 바꿔 병을 치료하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치료제는 기존 다이어트나 혈당 관리 앱 등 ‘건강관리 프로그램’(웰니스)과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치료제는 임상 시험을 거쳐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입증과 허가당국의 승인을 받은 제품입니다. 반면 치료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웰니스 제품은 식약처 허가를 거치지 않는 공산품입니다.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치료제는 3년 전에 나왔습니다. 미국의 ‘페어 테라퓨틱스’(Pear Therapeutics)에서 개발한 중독 치료용 앱 ‘리셋’(reSET)이 2017년 9월 FDA에서 허가를 받은 것이 디지털 치료제 시작입니다.

이 치료제는 알코올, 코카인, 대마 등에 대한 중독과 의존성을 치료하기 위한 스마트폰 형식의 앱입니다. 중독 환자는 의사가 처방해준 접근 암호(엑세스 코드)로 리셋(앱)을 실행한 뒤 앱 지시에 따르면 자연스레 충동에 대한 훈련을 받게 됩니다.

관련 중독 환자가 기존 치료 프로그램에 더해 12주 동안 리렛을 사용하면 물질 중독을 완화한다는 효과가 입증됐습니다. 총 399명 환자에 대해 기존 치료만 받는 환자군과 기존 치료 횟수를 줄이고 리셋을 함께 사용한 환자군 치료 성과를 비교한 결과에서 리셋을 함께 사용한 환자군의 금욕 유지 비율이 40.3%로 대조군의 17.6%에 견줘 두배 이상 높았습니다.

디지털 치료제가 개발되면 환자는 독성과 중독 등의 부작용이 적은 새로운 치료를 손쉽게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 치료제는 행동교정이 큰 효과를 발휘하는 우울증, 알코올중독, 치매, 불면증 등 정신질환은 물론 생활습관이 중요한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에서도 큰 치료 성과가 기대됩니다.

디지털 치료제를 만드는 ‘하이’의 김진우 대표는 “디지털 치료기기는 실시간과 장소 제약 없이 건강관리, 질병진단, 치료 등을 제공해 기존 약물대비 여러 장점이 있다”며 “특히 정신건강치료를 위한 행동유형형에 특화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주의력결핍및과잉행동장애(ADHD), 자폐증, 우울증 등 정신질환은 대부분 약물치료와 행동교정(인지행동치료, CBT Congitive Behavioral Therapy)을 표준치료법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병원은 대부분 수가 탓에 약물 처방에만 머무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내는 진료행위를 기준으로 수가를 결정하는 행위수가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많은 환자를 진료할수록 돈을 버는 병원 입장에서는 1명의 환자를 오래 봐야 하는 행동교정 치료를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 실제 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디지털 치료제를 활용하면 의사의 행동교정 치료를 디지털 치료제 앱을 통해 편리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디지털 치료제가의사의 직접적인 행동교정 치료를 대신할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 테어 테라퓨틱스의 리셋오(reSET-O)는 마약성 진통제 중독 치료제이며 팔라 알토 헬스 사이언스(Palo Alto Health Sciences)의 프리스피라(Freespira)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및 공황장애 치료제입니다.

디지털 치료제는 또 환자 상태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해 환자의 증상 관리를 도와줍니다. 프랑스 ‘발런티스(Voluntis)’의 ‘테라시움 온콜로지’(Theraxium Oncology)는 항암치료를 받는 암 환자의 증상관리를 지원합니다.

디지털 치료제는 산업적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많다고 평가됩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Allied market Research)에 따르면 세계 디지털치료제 시장은 2018년 21.2억 달러(2조6000억원)에서 2026년 96.4억 달러(11조6000억원)로 연평균 19.9% 성장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디지털 치료제는 일반적인 기존 신약 개발보다 개발 비용과 기간, 리스크 측면에서 유리하기도 합니다. 편웅범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의료산업기술사업단 교수에 따르면, 기존 의약품은 평균 3조원의 돈을 15년간 투여하는 데 비해 디지털 치료제는 200억원 안팎의 돈을 3.5~5년간 투입합니다.

디지털 치료제는 의료기기로 분류돼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전임상 단계가 없습니다. 사람 대상 임상 역시 임상 1상과 2상에 해당하는 ‘탐색 임상’과 임상 3상에 해당하는 ‘확증 임상’ 두 단계만 거치면 됩니다.

거대 다국적 제약사들은 디지털 치료제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제약사 암젠과 머크는 세계 최초 게임용 디지털 치료제를 만든 ‘아킬리 인터렉티브’에 투자했습니다.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의 자회사 산도즈는 ‘페어 테라퓨틱스’의 중독 치료제 리셋과 ‘리셋-O’의 시장 출시에 협력하기도 했습니다.

디지털 치료제는 미래의 약으로 기대되지만 실제 진료 현장에 안착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습니다. 지원준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최근 식약처 주최 디지털 치료제 관련 토론회에서 “디지털 치료기기 주 사용 질환군 및 연령 특성에 따른 한계가 있다”며 “약물과 달리 디지털치료기기의 순응도에 대한 문제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가령 디지털 이해도가 높고 젊은층이 디지털 치료제에 좀더 거부감이 적고 적응도도 높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같은 정신질환이라도 우울보다는 불안 환자가 디지털 치료제 수용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울환자는 무기력증을 통상적으로 동반하게 돼 의지가 낮은 반면 불안 환자는 의사들이 처방한 것을 준수하려는 강박이 크다고 합니다.

지 교수는 또 “디지털 치료기기를 통해 생성되는 개인별 건강 데이터의 소유권과 관련한 윤리적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개인정보보 보호를 위한 강력한 보안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 FDA는 디지털 치료기기가 속해 있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기업을 심사할 때 환자 안전성, 상품 질, 의료적 책임성, 사이버 보안, 허가후 관리 대응 등을 5가지 주요 원칙으로 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디지털 치료제에 대해서 보험 수가가 어떻게 적용될지도 핵심 과제입니다. 건강보험 적용 여부에 따라 약값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국내 디지털 치료제 개발에서 앞선 3개 기업을 불러 비공식적으로 개발 진행 상황 등을 점검했다”고 말했습니다. 심평원은 의약품의 건강보험 적용 여부 등을 결정하는 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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