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고]에너지전환 걸림돌 '한전체제'

  • 등록 2019-10-22 오전 6:00:00

    수정 2019-10-22 오후 1:45:21

[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 문재인정부의 에너지전환정책이 3년 차에 들어섰다. 독일에너지정책에서 빌려 온 에너지전환이라는 개념은 원전과 석탄을 줄이고 태양광, 풍력을 늘리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에너지전환은 사전적 정의를 넘어 독일사회가 추구해온 안전중심의 가치체계와 유럽의 경쟁적 에너지시장제도 위에서 작동한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속담처럼, 독일에서 작동하는 재생에너지가 한국에서는 성장이 더디고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논란만 지속되는 현실에 대해 자성이 필요하다. 선진국들의 열매만 볼 뿐 이들을 성장시킨 뿌리와 토양, 특히 국내 에너지시장제도와 모순되는 문제들에 대해서 눈을 감는다면 에너지전환은 ‘빛 좋은 개살구’로 끝날 것이다.

사실 우리의 전력산업은 일제강점기 동원체제형 국가독점 사업자였던 ‘조선전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해방 후 전력수요 증가와 설비노후화로 만성적 단전사태에도 설비교체를 위해 필요한 요금인상을 저지하던 정치권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했다. 자본주의 시장경험이 일천했던 당시 정치인들은 결국 ‘조선전업’ 체제의 부활에 합의했고, 그 와중에 일어난 박정희 쿠데타와 맞물려 한국전력이 탄생했다.

그 후 반세기 동안 한국경제는 철강, 자동차, 조선, 반도체, 통신 등에서 눈부신 발전을 해왔지만, 전력산업은 ‘스마트그리드’, ‘4차 산업혁명’ 등 온갖 구호만 남발할 뿐 이들 첨단기술을 담아내지 못했다. 정치인과 국민 인식체계 역시 크게 다르지 않고, 전기요금이 쟁점으로 떠오를 때마다 국회회의록과 언론사의 논조 역시 놀랍게도 30-40년 전과 바뀐 것이 없다. 오히려 국회에서는 몇 해 전 한전의 독점구조를 더욱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전기요금 억제를 위해 설립한 한전체제를 더욱 강화하면 할수록 자유로운 전력거래는 어려워진다. 청정에너지와 고부가가치 혁신기술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에너지전환은 결국 기존의 기술과 연료시장에 축적된 이해관계를 혁파하면서 에너지시장의 규율기준 역시 단지 저렴한 에너지에서 기술 간 공정경쟁, 소비자선택권 보장으로 전환시켜야 하는 어려운 과제다.

과도기적 대안도 시급하다. 국내 태양광이 주력 전원으로 기능하려면 최소 20년의 시간이 소요되고 그 사이 어떤 에너지원으로 전력을 공급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이자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0%를 차지하는 석탄화력의 감축을 위해서는 가스복합발전으로의 빠른 대체가 유일한 대안이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기술적으로 보완하기 위해서도 가스복합의 확대는 필연이다.

그러나 가스공사로부터 비싼 천연가스를 구매해온 한전 발전자회사는 가스복합으로 석탄을 대체할 수 없다. 연탄가스 중독사고가 만연했던 지난 1980년대 정부가 신속한 도시가스 보급을 위해 가스공사를 통해 주택용 가스비용의 일부를 한전에 전가해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국내 주택용 가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아홉 번째로 저렴하고 도시가스 보급률은 세계 3위에 도달했지만 발전용 가스가격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 이 때문에 한전 발전자회사들은 해외에서 가스직도입을 요구해왔지만 가스공사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이미 역사적 소임을 완료한 난방연료 전환정책이 발전부문 연료전환의 발목을 잡는 셈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반세기 동안 온갖 모순된 주장들이 난무하는 국회에 이런 복잡한 에너지정책의 주도권을 넘길 경우 문제를 오히려 더 키워온 경험을 해왔다. 때문에 에너지전환을 위해서는 행정부처와 국회로부터 독립적이고 전문화된 에너지시장 규제기구가 필요하다. 국가독점 전력 및 가스시장을 경쟁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이는 한국식 보수·진보 개념과 아무 상관이 없다. 국가동원체제에서 정상적 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준비가 부족한 이번 정부에서는 불가하지만 향후 집단지성으로 극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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