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문 대통령은 ‘부동산 피자’ 쏠 수 있을까

  • 등록 2019-11-22 오전 5:00:00

    수정 2019-11-22 오전 5:00:00

문재인 대통령이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피자 한 판씩 쏘겠다”고 약속한 것이 취임 초기였으니, 벌써 2년도 지난 얘기다. 기업인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호프 미팅’을 갖는 자리에서였다. 부동산 시장을 잡게 되면 피자로나마 관련 공무원들의 노고를 격려하겠다는 뜻이었다. 기업인들과의 대화 중에 가벼운 농담조로 튀어나온 얘기였지만 부동산만큼은 제대로 다뤄야 한다는 의지와 기대가 깔려 있었을 법하다.

부동산 시장이 달아오르던 것은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이 피자 약속 직후 실수요자 보호 및 투기억제를 위한 ‘8·2 안정화 방안’ 발표에서도 정부 의지를 엿보게 된다. 이미 문재인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으로 청약조정 대상지역에 대해 주택담보대출 비율을 낮춘다는 ‘6·19 대책’이 발표된 터였다. 그 뒤에도 ‘10·24 종합대책’ 등이 계속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강남 아파트값은 정부 정책을 비웃듯이 더 무서운 기세로 뛰어올랐다. 당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현 주중대사)은 “모든 사람이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정작 본인의 아파트도 껑충 치솟고 있었다. 정책총괄 책임자로서 오히려 정책 실패의 수혜자가 됐던 셈이다. 규제와 단속으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었던 것이다.

끝내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라는 수단까지 등장했다. 보유세 부담이 무거워진 데다 ‘3기 신도시’ 계획까지 내놓았으나 부동산 열풍을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호가만 올랐을 뿐 작년 ‘9·13대책’ 에 따라 관망세를 보이던 거래 건수도 ‘풍선 효과’를 타고 곳곳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여기에 자사고·외고 폐지 방침까지 추가되면서 우수학군 지역은 급상승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개발사업이 무더기로 예타 면제를 받는 등 정부·여당의 부동산 공약도 속속 제시되고 있다. 느닷없이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추가신설 방안까지 발표됐다. 과거 정권의 ‘토건 경제’를 비웃더니 그 전철을 따라가는 모습이다.

이러한 정책 실패가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을 주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게 문제다. 서민들이 집 한 칸 장만하려면 월급을 축내지 않고 20년이나 모아야 한다는 분석이 그것이다. 현 정부 출범 직후 16년을 모아야 했던 데서 4년 이상 늦춰진 것이다. 부동산 시장에 양극화가 빚어진 탓이다. 아무리 불이익 방안을 동원하면서 집을 처분하도록 유도하는 상황에서도 다주택자는 자꾸 늘어나는 추세다. 공급은 늘리지 않으면서 잘못된 정책들이 이어질수록 아파트 값은 오르기 마련이라는 역설적인 경험이 이번에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의 인식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지금의 부동산 시장은 안정화돼 있다”면서 자신감을 과시한다. 수도권 동향과 관계없이 지방 집값이 떨어지면서 전국 평균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을 의미한다면 ‘통계의 오류’일 뿐이다. 이제 부산과 울산을 비롯해 다른 지방 도시로도 부동산 사재기 열풍이 확대되고 있다니, 앞으로 어떤 비책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문 대통령은 부동산 분야가 아니라도 수많은 국정 과제를 놓고 씨름해야 하는 입장이다. 임기 전반기를 보내며 머리카락이 숱하게 빠진 모습에서도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의 고충을 짐작하게 된다. 하지만 정책이 처음부터 번지수가 틀렸다면 목표를 이루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다. 무려 17차례나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고도 지난 정권에 책임을 돌리는 자세도 떳떳하지 않다. 이번 국민과의 대화에서 “서울에 내 집 하나 마련하는 게 서민들의 꿈”이라는 질문자의 얘기를 그냥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은 문 대통령이 “피자를 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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