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원격으로 양식장 관리…소비자는 반값생선, 어민은 억대연봉

수산과학원 육·해상 양식장, 스마트 피쉬케어
스마트폰·태블릿으로 먹이 주고 원격 관리도
한국판뉴딜 6000억 투입, 노르웨이처럼 혁신
‘원가 절감·착한 가격·환경오염 감소’ 일석삼조
  • 등록 2020-10-22 오전 5:00:00

    수정 2020-10-22 오전 5:00:00

[경남 창원·하동=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그럼 이제 클릭을 해볼까요?”

해양수산부 소속 국립수산과학원 이동길 연구관이 경남 창원시 진해구 수과원 내수면양식센터 스마트양식제어실에서 창원의 육상 양식장, 하동의 해상 양식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경남 창원시 진해구 국립수산과학원(수과원) 내수면양식센터 스마트양식제어실. 이동길 연구관이 대형 모니터를 보며 마우스를 딸깍딸깍 눌렀다. 그러자 수과원에서 100km가량 떨어진 하동군 금남면 중평항 앞바다가 보였다. 다시 마우스를 누르자 총 4400m²(1331평) 규모의 가두리 해상양식장 곳곳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차를 타고 배를 빌려 1시간 넘게 가지 않아도 24시간 실시간 원격으로 양식장을 볼 수 있었다.

이번엔 이 연구관이 태블릿을 켰다. 태블릿 화면에 사육 현황, 수중 영상, 먹이 공급, 어체(魚體) 측정, 수중 드론, 사육 일지, 데이터 관리 등이 떴다. 먹이 공급 버튼을 누르자 숭어 치어 20만마리가 있는 해상양식장에 배합사료가 공급됐다.

이 연구관은 “인터넷만 연결되면 창원뿐 아니라 서울이든 해외에서든 태블릿·스마트폰으로 해상양식장에 먹이를 공급하고 실시간으로 영상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과원은 이렇게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먹이 공급·현장 점검이 가능한 ‘육상스마트 양식장 플랫폼’을 특허 출원한 상태다.

태블릿·스마트폰으로 스마트하게 키운다

수과원은 2018년에 하동에 해상 스마트양식장, 2019년에 창원에 육상 스마트양식장을 구축했다. 이는 기존 가두리 양식장에 자동화와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것이다. 기존 양식장은 배를 타고 인부가 바가지 등으로 일일이 사료를 뿌려야 한다. 먹이를 언제 얼마나 줬는지 정확히 측정할 수 없어 먹이 문제로 물고기가 집단 폐사하더라도 정확한 원인을 알기도 힘들었다. 양식 성공 여부가 상당부분 ‘감’과 ‘운’에 좌우됐다는 얘기다.

반면 수과원이 운영하는 육·해상 스마트양식장은 실시간으로 양식 환경을 관리한다. 창원의 496㎡(150평) 규모 육상 스마트양식장의 5t 수조 20개, 20t 수조 2개에 향어 치어 3000마리, 메기 치어 3000마리, 뱀장어 795마리 등이 양식되고 있다. 사육 상황은 곳곳에 설치된 스크린만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메기를 사육 중인 A3 수조 앞 스크린에는 현재양(1800마리), 평균무게(0.08kg), 사육밀도(0.7kg/㎡), 일일 먹이량(0.3kg), 사육기간(310일)이 빼곡히 정리돼 있다. 수온(23℃), 용존산소(6.0 mg/L), pH(7.5), 수위(0.6m) 등 사육 환경도 실시간 기록한다. 헬스 트레이너가 일대일 맞춤형 건강관리를 하는 헬스케어를 하는 것처럼 물고기를 데이터로 정밀 관리하는 ‘피쉬케어’다.

창원의 육상 스마트양식장에 설치된 스크린에는 사육환경 등을 보여주는 스크린이 배치돼 있다. [사진=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하동의 해상 스마트양식장도 마찬가지였다. 이동길 연구관이 태블릿으로 ‘어체 측정’을 클릭하자, 바다에서 헤엄치는 숭어가 보였다. 이후 모니터에는 측정길이 30.3cm, 추정무게 0.5kg이라고 쓰인 측정 결과값이 떴다. 굳이 배를 타고 양식장에 가서 꺼내 보지 않아도 숭어 사육 상황을 점검할 수 있다. 가두리 양식장에 설치된 수중 카메라가 태블릿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이 보는 모니터에는 수온(22.7℃), 용존산소(9.6ppm), 염분(32.7‰) 데이터도 실시간으로 떴다. 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되는 물고기가 발견되면 수중드론을 투입해 점검한다. 박정준 수과원 연구사는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두리 양식장 간이숙소에 상주하고 있다”며 “앞으로 스마트양식 기술이 발달할수록 편리하게 원격 관리가 가능해질 것이다. 인건비도 절감할 수 있어 생산성도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수산과학원 이동길 연구관과 박정준 연구사가 경남 하동군 금남면 중평항 인근 해상 스마트양식장에서 태블릿을 보며 숭어 사육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국립수산과학원 이동길 연구관과 박정준 연구사가 경남 하동군 금남면 중평항 인근 해상 스마트양식장에서 태블릿을 보며 숭어 사육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한국판뉴딜로 스마트양식 업그레이드


해양수산부와 수과원은 이같은 육상·해상 스마트양식장을 운영한 경험을 토대로 더 혁신적인 양식장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른바 아쿠아팜 4.0 프로젝트다. 아쿠아팜은 해수부가 양식을 뜻하는 아쿠아컬처(aquaculture)와 양식장을 뜻하는 피쉬 팜(fish farm)을 조합해 만든 신조어다. 4.0이 붙은 것은 재래식(1.0), 기계를 도입한 수동식(2.0), 디지털 자동식(3.0)을 넘은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방식을 뜻한다.

이는 AI가 종자 보급, 사료 공급, 백신 투입, 양식장 설비 운영 등 양식 전 과정을 스스로 판단해 빅데이터에 기반해 관리하는 스마트양식장이다. 종자·사료 개발 및 관리, 양식장 기자재 운영, 유통·판매까지 최첨단 스마트양식을 도입한 노르웨이를 사실상 벤치마킹한 것이다. 한국판뉴딜에 포함된 이 사업은 연내에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 내년부터 2027년까지 6000억원 이상 사업비가 투입된다. 수산업 괸련 단일 연구개발(R&D) 사업 중 역대 최대다.

해수부는 한국판뉴딜 아쿠아팜 프로젝트 관련해 △효율적인 관리로 양식 기간 단축 및 사료비·인건비 절감 효과 △원가 절감에 따라 소비자가격이 내린 반값 수산물 출현 △사육환경에 맞춰 사료가 공급돼 폐사율이 줄고 물고기가 골고루 성장하는 효과 △맞춤형 사료 공급으로 양식장 인근 환경오염 최소화 효과 등을 기대하고 있다.

아쿠아팜 4.0 실무를 맡고 있는 이상길 해수부 과장은 “원가가 반값으로 절감돼 ‘반값 수산물’이 나올 수 있다”며 “K방역처럼 우리나라 양식도 최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동길 연구관이 태블릿으로 ‘어체 측정’을 클릭하자, 바다에서 헤엄치는 숭어가 보였다. 이후 모니터에는 측정길이 30.3cm, 추정무게 0.5kg이라고 쓰인 측정 결과값이 떴다. [사진=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국립수산과학원 연구진이 경남 하동군 금남면 중평항 인근 해상 스마트양식장에서 수중드론으로 물고기를 집은 뒤 사육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제공
다만 사료, 백신, 기자재, 가공, 유통 등 연관산업이 기술개발→실증→산업화→재투자 선순환을 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해수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아쿠아팜 4.0 관계부처의 긴밀한 공조도 전제돼야 한다. 노르웨이도 현재와 같은 스마트양식장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30년 이상 걸렸다. 한국판뉴딜 스마트양식 전담팀 없이 순환근무로 담당 연구진·공무원이 교체되면 노르웨이보다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박정준 연구사는 “스마트양식장을 만드는 것은 불확실성이 큰 자연을 상대하는 점에서 우주선 제작과 비슷하다. 우주산업처럼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장기적인 로드맵에 따라 빅데이터를 구축해 양식업의 경영 불확실성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철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양식·어업연구실 전문연구원은 “고령화, 어촌인구 감소, 기후변화에 따라 과거의 낡은 방식의 양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며 “우리도 노르웨이처럼 ‘원가 절감, 착한 가격, 친환경 스마트양식’으로 지속가능한 수산업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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