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법률칼럼]생체정보 수집에 응하지 말아야 할 이유

불기소사건 피의자 지문날인 '위헌' 소지
생체정보 수집으로 인권 침해할 수 있어
  • 등록 2020-02-22 오전 8:11:00

    수정 2020-02-22 오전 8:11:00

이데일리는 새해 들어 ‘인천 법률칼럼’을 연재합니다. 인천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들이 칼럼을 통해 유용한 법률상식, 변호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 일상의 잔잔한 감동을 독자와 나눕니다.[편집자 주]

김광민 변호사.


[김광민 변호사] 경찰과 검찰은 공권력이 무너지고 있다며 아우성이지만 여전히 대다수 시민에게 경찰서에 간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닐 것이다. 더욱이 범죄혐의가 인정된다는 의미인 ‘피의자’로 경찰에 소환된다면 불쾌를 넘어 공포가 되기도 한다. 한 평 남짓의 좁은 취조실에서 철저히 수사관 위주로 설계된 책상을 마주하고 몇 시간 동안 조사를 받다보면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라도 녹초가 되고 만다.

조사가 끝나면 수사관은 피의자가 몇 시간 동안 신경을 곤두세우고 조사받은 내용이 정리된 ‘피의자 신문조서’를 인쇄해 건네준다. 피의자는 이를 꼼꼼히 읽고 수정사항이 없으면 조서에 도장을 찍거나 한 손가락으로 지문날인을 한다. 이로써 피의자 신문 절차는 마무리된다. 하지만 피의자는 곧바로 경찰서를 떠날 수 없다. 전자지문 날인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신문조사가 끝나면 수사관은 거의 예외 없이 피의자의 열 손가락 지문을 전자날인한다. 피의자는 지문체취기에 자신의 열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나서야 비로소 경찰서를 떠날 수 있다. 수 시간에 걸친 조사로 한껏 위축된 피의자가 전자지문을 날인하라는 수사관의 명령과도 같은 요구에 불응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아니 불응이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하기조차 어렵다.

십(열 손가락)지문 채취는 엄연한 강제수사다. 게다가 어떠한 법적 근거도 없는 수사관행이다. 경찰은 ‘형의 실효등에 관한 법률(형실효법)’을 근거로 주장하지만 이 또한 근거 없는 억지일 뿐이다. ‘형실효법’ 제2조와 제5조에 따르면 경찰이 피의자의 지문을 채취하는 것은 정당한 수사에 해당한다. 그러나 ‘불기소처분 사유에 해당하는 사건의 피의자’에게는 지문을 채취하지 않도록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만약 예외 없이 십지문을 채취하도록 규정했다면 분명 위헌시비에 휘말렸을 것이다.

피의자가 불기소처분을 받을지 기소처분을 받을지는 수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 때문에 피의자 신문 단계에서는 기소여부를 쉽게 예단할 수 없다. 더욱이 ‘무죄추정’이라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이 존재하는 한 모든 피의자에게 불기소의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한다. 때문에 기소되기 전, 최소한 경찰이 수사를 끝내고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기 전에 피의자의 십지문을 채취하는 것은 분명히 위법 소지가 있는 수사방식이다.

“그까짓 지문채취 가지고 뭘 그렇게 예민하냐”고 힐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문은 특정인을 구분할 수 있는 생체정보다. 그리고 수사기관이 지문 정보를 수집하고자 하는 것은 시민을 예비범죄자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언제든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고 더 나아가 이미 발생한 범죄의 범인일 가능성을 염두에 둔 수사이기 때문이다. 물론 피의자 지문채취를 통해 장기미제 사건을 해결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지문이나 DNA 등 생체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장기미제사건을 해결한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경기지역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으로 밝혀진 이춘재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사건 해결과 범인 검거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국가가 국민의 생체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용인될 수는 없다. 생체정보는 개인의 것이다. 그것을 언제, 어떻게, 어디서, 어디까지 사용할지는 온전히 개인이 결정할 사안이다. 단지 피의자 신분이라는 이유만으로 열 손가락의 지문을 채취당할 수는 없다.

인권의 가장 기본은 개인의 신체에 대한 사항을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한다. 신체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어떠한 권리, 인권도 보장될 수 없다. 국민의 신체정보가 국가에 의해 통제된다면 국가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게 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에 의한 국민의 감시가 가능하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무총리실, 국정원, 기무사 등이 민간인을 사찰해 문제가 된 것이 불과 수년 전 일이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지문 채취라도 이는 개인 신체의 자유에 관한 문제다. 그것을 국가가 침해한다면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가 된다. 더욱이 현행 피의자 십지문 채취 관행은 앞서 언급했듯 법적 근거도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정기관이 그렇게 수집한 정보를 국민 감시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그 누구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서 문턱을 넘지 말아야겠지만 만에 하나 피의자가 되어 경찰서를 찾아야 한다면 최소한 십지문 날인만은 거부해보자.

김광민 변호사 이력

△부천시 고문변호사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인천지부 부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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