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나라가 흉흉한 시점에 n번방이라 불린 디지털 성범죄가 터졌다. ‘박사방’ 운영자인 조주빈이 유인·협박해 음란 영상을 촬영한 피해 여성 74명 중 미성년자가 16명이나 포함되었고, 공유방 60여 곳의 이용자가 26만 명에 달한다는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이례적으로 대통령까지 나서서 경찰에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을 뿐만 아니라,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을 공개해달라는 청원에도 무려 180만 명 이상이 동의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온 국민이 공분한 상황이다.
우리 사회에서 디지털 성범죄가 사회문제가 된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러나 문제가 불거진 그 순간이 지나면 곧 잊혀 졌고 이후에도 유사 범죄가 반복되다가 n번방에 이른 것이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직접적인 대책이라 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이 제일 크다.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제작한 경우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사람을 살해한 자가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인 점을 고려하면 결코 가벼운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재판현실은 어떤가.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영상물을 제작해서 실형을 선고 받은 피고인의 평균 형량은 징역 3년 2개월에 불과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법원은 4월에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제작에 대한 양형기준을 다룰 예정이라고 한다. 입법자가 살인죄에 버금가게 형벌을 규정한 취지는 음란물 제작이 인간의 존엄성, 더 나아가 영혼을 말살하는 죄라는 것을 사법부가 인식하기를 바란다.
신상공개도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 경찰이 조주빈을 검찰에 송치하며 포토라인에 세운다고 했을 때 검찰은 “형사 사건 공개금지 규정(법무부 훈령)에 따라 촬영이나 중계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가기관 간 상호 모순된 대처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법무부는 성폭력특별법에 따른 신상공개의 경우 촬영이 허용되었던 훈령을 폐지한 과오를 인정하고 개정에 나서야 한다.
아이들이, 그리고 여성들이 협박을 당하는 모습을 100만 원 이상 지불하고 지켜 본 사람이 우리 주변에 수십 만 명에 이른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소름끼친다. 코로나19만큼이나 우리 사회에 해로운 것이 n번방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