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의도 수상한 4차 재난지원금보다 백신이 먼저다

올해 예산 본격 집행 시점에 4차 재난지원금용 추경설
4월 보궐선거 의식…소비 효과보다 정치적 효과 기대
빚내 지원하고 세금으로 상환 어불성설, 방역 안정 우선
  • 등록 2021-01-06 오전 12:00:00

    수정 2021-01-06 오전 7:44:25

[세종=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정부가 올해 편성한 558조원 규모의 ‘슈퍼 예산’을 본격 집행하기도 전에 정치권에서 벌써부터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해야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다며 작년 4월 지급했던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권의 유력 정치인 중심으로 군불을 지피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잊고 있는 게 있는 듯 싶다. 3차 재난지원금은 아직 지급을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영세자영업자 등 피해 계층을 두텁게 지원하자며 9조3000억원 짜리 대책을 마련해놓고서는 이를 집행하기도 전에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꺼내드는 것은 의도를 의심해 볼수 밖에 없게 한다.

이낙연(왼쪽에서 4번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3차 재난지원금 시작도 안했는데…4차가 거기서 왜 나와?

5일 국무회의에서는 3차 재난지원금인 맞춤형 피해 지원 대책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예비비(4조8000억원) 지출안을 심의·의결했다. 오는 6일 소상공인 대상 버팀목 자금 등 사업 공고 후 11일부터 지급을 시작할 예정이다. 3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도 전에 4차 재난지원금 이야기가 나온 셈이다.

‘4차 재난지원금 전국민 지급’은 여권에서 불씨를 지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4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가 진정되고 경기를 진작해야 된다 할 때는 전국민 지원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같은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고통이 극심한 업종과 개인에 대한 3차 재난 지원 패키지에 더해 2차 전국민 재난위로금 지급을 위한 논의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을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우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가장 열심이다 . 그는 전날 “전 국민을 대상 1차 재난지원금을 넘어서는 규모의 재난지원금 지급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여야 국회의원과 기획재정부 등에 보냈다. 지역화폐 형태로 대규모 4차 재난지원금을 조성해 전국민에게 지급해 소비를 촉진해야 한다는 게 이 지사의 주장이다.

코로나19 3차 확산에 따른 경제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2~3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면서 정부와 여당은 ‘피해를 입은 계층에 대한 두터운 지원’ 기조를 유지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이제는 여당에서도 재난지원금을 선별 지급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협의가 잘 이뤄졌다”고 했다. 그런데 새해 들어 갑자기 여당 중심으로 전국민 지급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모습이다. 의도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약 14조원을 풀어 전국민에게 4인가구 기준 100만원 상당의 지원금(카드포인트 등)을 지급했던 1차 재난지원금은 소비진작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투입한 재정 대비 가성비는 상당히 떨어진다. 한국개발연구원(KDI)는 최근 1차 재난지원금에 따른 투입 재원대비 매출 증대 효과를 약 26.2~36.1%로 평가했다. 재난지원금 100만원을 받았다면 본래 지출액보다 추가로 26만~36만원 가량을 사용했다는 의미다. 재정을 투입한 1차 재난지원금이 100% 민간 소비에 들어가지는 않은 것이다.

정치권은 1차 재난지원금의 경제적 역할보다 ‘정치적 효과’에 더 주목하는 듯하다.

1차 재난지원금 지급 후 치뤄진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위성 비례정당 17석을 합쳐 총 180석(60.0%)을 확보하며 유례없는 압승을 거뒀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이해찬 대표가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에 반대하던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해임론을 꺼내는 등 총선 전 1차 재난지원금 지급 등 추경 규모를 늘리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만일 추경을 편성해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4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면 서울·부산시장 등 4월 보궐선거가 열리기 직전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선거용으로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지난달 24일 서울 한 식당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
“피해 계층 두텁게 지원할 때, 전국민 지원 명분 없어”

1차 재난지원금 규모를 넘어서는 4차 재난지원금을 마련한다면 결국 빚을 내야 한다. 정부는 이미 3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해 기정 예산에서 3조4000억원, 목적예비비에서 4조8000억원 등 8조2000억원을 쓴 상태다. 남아있는 ‘비상 자금’인 예비비는 목적예비비 2조2000억원, 일반예비비 1조6000억원 뿐이다. 통상 예비비가 태풍·장마 등 재난재해에 쓰이는 점을 감안하면 남은 금액이 많다고는 할 수 없다.

결국 4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려면 연초부터 추경을 새로 편성해야 하는 부담이 발생한다. 정부는 이미 올해 사상 최대 수준의 예산을 편성했고 재원 조달을 위해 90조원 안팎의 적자국채를 발행키로 결정했다.

10조원이 넘는 4차 재난지원금을 마련하려면 추가 국채 발행이 불가피한데 이렇게 되면 올해말 국가채무는 당초 목표인 956조원을 훌쩍 뛰어넘게 된다. 정부는 2025년 국내총생산(GDP)대비 ‘국가채무비율 60%·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 1%’ 산식을 적용한 재정준칙 도입을 준비 중인데 국가채무가 늘어날수록 준칙 준수는 더욱 버거워질 전망이다.

양향자 의원은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이유로 “코로나 가시밭길을 묵묵히 견딘 모든 국민에게 드려야 할 위로 차원”이라고 말했다. 국민을 위로하기 위해 정부가 빚을 내 돈을 주겠다는 발상은 이치에 맞지 않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산이 남아 있다면 전국민을 주는 게 맞겠지만 지금은 빚을 내서 줘야 할 판국”이라며 “나랏빚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데 빚을 내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방역 상황이 엄중한 상황에서 소비 활성화를 위한 전국민에게 돈을 준다는 것도 납득하기 힘들다. 5인 이상 모임 금지 등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고 있는데 지역화폐를 지급해봤자 소상공인들이 혜택을 보기 어렵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방역 조치로 피해를 입은 계층의 선별 지원은 명분이 있지만 전국민 지원은 소비 진작을 추구해야 할 만큼 상황이 안정됐는가를 감안해야 한다”며 “지금은 방역 강화로 피해를 입은 대면서비스업 등을 두텁게 지원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게다가 소비 활성화를 위한 대책은 이미 올해 예산에 대거 포함돼 있다. 지역사랑·온누리상품권만 18조원을 발행할 예정이고 외식·관광·문화 등 소비쿠폰 발행 규모는 작년보다 두배나 늘렸다. 올해 예산에 포함한 소비 대책을 제대로 시행해 보지도 않은 상황에서 소비진작을 위해 4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국민들의 관심사는 온통 백신에 쏠려 있다. 변이바이러스 공포가 새로 번지는 가운데 영국·미국 등 선진국은 백신 접종을 시작하며 국가간 양극화도 심화할 전망이다.

만약 표심을 노리고 있는 것이라면 성급한 전국민 재난지원금 보다 하루라도 빠른 백신 도입과 접종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한다. 여당이 보궐선거에서 승기를 잡고 싶다면 ‘전국민 보편 지급’보다 ‘전국민 백신 접종’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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