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를 포기한 백석에게서 용기를 얻었죠"

김연수 8년만 장편 '일곱 해의 기억'
시인으로서 신념 지킨 백석의 삶 그려
"특수한 시대의 피해자 아냐"
  • 등록 2020-07-08 오전 6:00:00

    수정 2020-07-08 오전 6:00:00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오늘날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히는 백석(1912~1996). 해방 후 북한으로 넘어간 그는 혹독한 전후 시기에도 유일한 꿈으로 시집을 내는 것을 꼽을 정도로 시를 사랑했다. 그런 그는 1962년 수령에 대한 찬양을 담은 시 ‘나루터’를 마지막으로 시를 발표하지 않는다. 그가 스스로 시를 더는 쓰지 않기로 결심한 것인지, 쓰지 못하게 된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소설가 김연수(51)는 8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에서 왜 백석이 시를 쓰지 않게 됐는지를 담았다.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대 앞 한 카페에서 만남 김 작가는 “백석은 자신에게 소중한 시를 지키기 위해 오히려 시 쓰기를 포기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는 “백석이 당이 원하는 시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양강도 삼수군 오지로 쫓겨났을 때 나이가 46세였다”며 “2016년 내가 그 나이가 되고 나니 명예와 신념 둘 사이에서 고민해야 했던 백석에게 감정 이입을 하게 됐다”고 책을 쓰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백석은 가무락조개·나줏손·귀신불처럼 스쳐 지나갈 만한 단어들을 섬세히 담아 시를 쓰는 시인이었다. 하지만 1956년 북한 공산당이 체제를 강화하던 시기에는 선전을 위한 직설적인 단어와 시만 허용됐다. 음식 이름, 옛 지명, 사투리 등의 단어는 사라지고 있었다. 책은 그런 상황에서 백석이 시인으로서 느꼈던 책임감을 전한다. 백석은 “전쟁을 생각하지 않고 평화를, 회복을 생각할 수 없듯 시인은 매일매일 죽어가는 단어들을 생각해야만 해요”라 말한다.

백석은 체제에 굴복할 것인지 자신의 신념을 지킬지 고민했지만 그는 특수한 상황의 피해자가 아니다. 김 작가는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무언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누구나 처할 수 있는 일반적 경험”이라며 “선뜻 결정하기 힘든 갈림길에서 백석은 자신의 선택을 우리에게 보여줄 뿐”이라고 설명한다.

김 작가는 책을 쓴 후 스스로도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한다. 임진왜란에 관한 소설을 10년째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는 그는 “글이 성에 차지 않아 완성을 못 하고 있는데 끝을 낼 수 있을까 하는 초조함이 사라졌다”며 “언제까지 책을 완성하기 보다는 내가 쓰고자 하는 걸 쓰는 것이 옳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중년에 이른 김 작가는 백석이 쓴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에도 놀라움을 표현했다. 시는 실패에 가까웠던 백석 스스로의 삶에 대한 자전적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북한에서 시인으로서 무명에 가까웠고, 아내와 이혼하고 가족과도 연락이 끊긴 채 낯선 객지에서 살아갔다. 시의 초반에는 이런 자신의 삶에 대한 슬픔과 부끄러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지만 시의 중반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라는 말과 함께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고 그는 눈보라로 비유되는 삶의 시련에도 꿋꿋이 살아가겠다고 말한다. 김 작가는 “비애에 찬 중년의 남자가 한순간 생각을 전환하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웬만한 믿음으로는 불가능하단 걸 동년배가 되고 깨달았다”며 “마치 자신이 후대에 잊히지 않을 것을 보고 온 것 같다”고 말한다.

또 코로나19 시대에 우울해하는 사람들이 책을 통해 작은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전한다. 김 작가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 한가운데에도 생명의 의지만은 남아 꿈틀대는 것을 보며 일종의 감동을 받았다”며 “우리 사회도 전염병의 시대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소설가 김연수(사진=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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