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개막한 국립창극단 신작 ‘춘향’의 한 장면. 이몽룡(김준수 분)이 써온 혼인증서를 춘향(이소연 분)이 도도한 표정과 함께 찢어버린다. 당황한 이몽룡이 “진심이다”라며 애원하자 춘향은 당돌하게 말한다. “그럼 천지신명께 맹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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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을 떠나간 임을 한없이 기다리는 지고지순한 캐릭터로만 생각했다면 놀랄 만하다. 국립창극단의 ‘춘향’은 자신의 생각을 똑 부러지게 내세우는 당당한 춘향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몽룡과의 첫 만남도 신선하다. 이몽룡이 자신을 찾는다는 말에 춘향이 “양반이 부르면 가야 하니? 못 가”라고 딱 잘라 말하자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온다.
6년 만에 국립창극단이 다시 무대에 올린 ‘춘향’은 판소리가 바탕인 창극의 본질은 지키면서 캐릭터 설정과 극의 전개 등 포장만 살짝 바꿔 새로움과 익숙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혼인증서를 찢은 춘향이 이몽룡의 진심을 확인하고 함께 부르는 ‘사랑가’가 그렇다. 이몽룡을 쩔쩔매게 하던 춘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온화한 표정으로 “어화둥둥 내 사랑이야”라며 노래를 부른다. 어두운 무대 위를 촘촘히 수놓는 작고 하얀 조명이 마치 두 사람의 우주를 보여주는 듯 몽환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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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학도의 등장과 함께 시작하는 2막은 판소리의 매력이 더욱 빛을 발한다. 감옥에 갇힌 춘향이 노래하는 절절한 ‘옥중가’, 걸인이 돼 돌아온 이몽룡이 장모인 월매와 만나 부르는 ‘어사와 장모’ 등은 판소리 속 대목을 그대로 무대에 올려 소리에 오롯이 집중하게 만든다. 극의 대미를 장식하는 ‘어사출또’ 장면은 강렬한 기타 사운드에 번쩍이는 조명으로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번 공연은 국립극장 창설 7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다. 지난 2월 말부터 코로나19 여파로 극장 문을 잠시 닫았던 국립극장은 ‘춘향’을 시작으로 다시 문을 연다. 지난 14일 첫 공연은 그동안 공연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마스크를 쓴 관객들의 추임새와 박수가 공연을 가득 채웠다. 배우 겸 연출가 김명곤이 대본과 연출, 유수정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이 작창을 맡았다. 작곡가 김성국이 음악을 담당했다. 공연은 오는 24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