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당선인이 대구까지 찾아내려가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다니, 두 사람 사이에 무슨 깊은 사연이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그중에서도 정의연과 윤 당선인이 후원금을 거둬 피해자들에게 나눠주지 않고 제멋대로 썼다는 폭로 내용에 눈길이 쏠린다. 이미 상당 부분은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회계처리에서 단순 실수로 간주하기 어려운 뭉텅이 누락이 적지 않은데다 윤 당선인이 개인적으로 받은 모금액 중에서도 상당 부분 사용처가 투명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들의 거주지로 마련했다는 안성 쉼터는 특히 의혹투성이다.
그렇다면 일단 국민 앞에 사정을 정확히 공개하고 잘못을 고백하는 게 도리다. 정의연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권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국민적 신뢰를 얻었고, 또 그 신뢰가 활동 영역을 넓히는 발판이 됐던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기업들이 나서서 후원금을 냈고, 어린 학생들까지 두루 모금에 참여한 데서도 신뢰의 정도를 확인하게 된다. 의혹의 당사자인 윤 당선인이 뒤늦게나마 오늘 공개 해명에 나선다니 솔직한 답변을 기대한다.
정의연이 정파적 조직이기주의를 앞세워 온 데 있어서도 반성이 필요하다. 베트남, 콩고, 짐바브웨 등으로 활동무대를 넓힌 것이 잘못일 수는 없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을 이용했던 측면은 없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필요할 때는 할머니들을 앞세웠다가 자기들 마음대로 팽개쳤다는 증언과 부합되는 대목이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대신 지도부의 노선 강화에만 신경을 썼다는 지적이다. 역대 지도부의 정치·사회적 위치가 그만큼 높아졌고, 윤 전 이사장이 이번 국회에 진출하게 된 것도 그런 결과다.
이번 사태의 계기를 던진 이 할머니를 헐뜯는 얘기들도 들려온다. 심지어는 ‘토착 왜구’라고까지 비난한다는 것이다. 자나깨나 가슴에 납덩이로 짓눌리는 아픔을 견디며 지내 왔는데도 이제 말년에 이르러 다시 눈물과 한숨의 가슴앓이에 시달리게 됐다. 정치적 노선에 어긋난다고 여권 인사들로부터 버림받고 있는 것이다. ‘배신자’를 두둔하면서 피해 당사자를 마치 죽창으로 찌르겠다는 태세다. 우리 사회의 우울한 이분법적 자화상이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