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매일 30잔 테이스팅…'최상의 맛' 인스턴트 커피에 인생 걸었다

김준수 동서식품연구소 솔루블커피팀장 인터뷰
10년전 출시한 카누, 재택근무 속에서도 효자노릇
혀가 가장 예민한 오전 10시와 오후 3시 테스트가 가장 중요한 업무
10년간 5번 추출방식 변화, 매일 매일이 테스트 연속
연구원들 금연은 당연 시제품 앞두고 음주도 안해
  • 등록 2021-10-22 오전 8:00:00

    수정 2021-10-22 오전 8:00:00

[이데일리 김보경 기자] “하루에 보통 30잔 정도를 테스트하죠. 전날 만든 시제품을 혀가 가장 민감한 오전 10시에 맛과 향이 기존제품과 어떻게 다른지를 매일 확인하는 거죠. 신제품 출시가 닥치면 오후 3시에도 테스트를 추가해서 60잔까지도 마시는 날이 있습니다.”

▲김준수 동서식품연구소 솔루블커피팀장. (사진=김태형 기자)
김준수 동서식품연구소 솔루블커피팀장의 하루는 커피 시음으로 시작해 시음으로 끝난다. 1992년부터 30년간 그의 손을 거치고 혀를 통과한 동서식품의 커피제품만 수십가지. 그중에서도 2011년부터는 ‘카누’에 집중하고 있다. 인스턴트 원두커피라는 새로운 시장을 연 카누가 벌써 10년이 됐다. 그동안 카누 제품도 10가지로 늘었다. 1년에 1제품씩 나온 셈이다.

지금도 가끔 하는 블라인드 테스트. 10가지의 카누 제품은 물론 타사 제품까지 김 팀장의 ‘호르륵’ 한 번이면 제품명과 회사를 너무도 당연하게 알아 맞춘다. ‘호르륵’은 커피를 테스트하는 방법이다. 김 팀장은 “뜨거운 커피를 한 스푼 떠서 한번에 흡입 입안에서 향과 맛을 느끼고 뱉는다. 처음 흡입할 때 맛과 향이 가장 잘 느껴지기 때문에 굳이 한잔을 다 마시지는 않는다”고 했다. 어떻게 하루에 30~60잔의 커피를 마실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해소됐다.

세계 1위 커피 회사 네슬레가 인스턴트 커피 점유율 1위를 차지하지 못한 유일한 국가는 한국. 한국의 인스턴트 커피 시장 1위인 동서식품에도 위기는 있었다. 지난 10여 년간 커피전문점의 브랜드와 가맹점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 인스턴트 커피의 시대는 갔다고들 했다. 하지만 2021년 현재까지도 10년 전이나 변함없이 1조 50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확대됐다. 일명 ‘노랑커피’ 모카골드 소비가 줄어들면서 또 한번 어려움을 겪을 줄 알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김 팀장은 “위기를 넘긴 건 카누의 덕”이라고 자부했다. 커피전문점의 커피와 가장 비슷하게 맛을 내려고 개발한 카누는 연간 10억잔 이상이 팔리고 있다. 작년에는 모카골드의 줄어든 매출을 카누가 홈카페에서 인기를 끌면서 매웠다. 카누 판매량은 전년보다 오히려 15%나 늘었다.

카누 개발 당시 획기적인 제품이긴 했지만 솔직히 이 정도의 인기는 예상치 못했다는 게 김 팀장의 솔직한 회고다. 그는 “당시에는 모카골드의 존재감이 너무도 컸다. 사내에서는 괜히 새로운 제품을 출시해 모카골드의 시장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개발 담당이었던 김 팀장은 더 공을 들여야 했다. 연구소에는 커피 공장 설비를 20분의 1로 출소시킨 ‘파일럿 플랜트’를 마련했다. 기존 모카골드와 전혀 다른 상품이다 보니 설비부터 새로 마련해야 했기 때문. 커피 알갱이의 크기부터 에스프레소 추출 시간과 온도 조건을 달리해 수백 번의 실험을 거쳤다. 그중에서도 특히 향 회수 공법에 공을 들였다. 김 팀장은 “인스턴트 커피이기 때문에 에스프레소 추출액을 분말화해야 하는데 건조하면 향이 날아갈 수밖에 없다”며 “별도의 장치를 통해 향을 회수하는 게 핵심기술인데 와인 제조시 쓰던 향 회수 공법을 동서식품이 커피업계 최초로 응용,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10년간 카누의 맛은 변화가 있었을까. 놀랍게도 5번이나 추출방식이 달라졌다. 김 팀장은 “10년 전 카누 제품을 맛보면 지금 입맛에 전혀 맞지 않을 것”이라면서 “매해 소비자 조사를 통해 개선점을 찾고 조금 더 커피전문점의 에스프레소와 같은 맛을 내기 위해 실험하고 그게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소비자 반응이 반영된 대표적 사례가 ‘카누 미니’다. 초기 카누 제품은 커피전문점의 아메리카노를 모티브로 개발됐기 때문에 스틱 1개당 물 200㎖가 권장량이었다. 그런데 사무실에서 종이컵을 주로 사용하던 소비자들이 카누 스틱 1개를 2명이 나눠 먹거나, 두번에 나눠 마시는 일이 종종 목격된 것. 김 팀장은 “종이컵 사이즈에 익숙한 한국인 특유의 음용 습관을 고려해 120㎖ 종이컵 기준에 적합한 용량으로 ‘카누 미니’를 2년 후 출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춰 변화하지만 품질 만큼은 ‘최상’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항상 원두와 커피의 맛과 향을 ‘표준’과 ‘달라진 맛’을 구분할 줄 아는 김 팀장과 같은 연구원들의 동서식품의 가장 큰 자산이다. 연구소 직원들은 입사 초기 ‘맛 트레이닝’을 받는다. 일주일 정도 집중적으로 커피에서 구현해야하는 다양한 맛을 경험하고 그것의 적합한 표현방법에 대해 교육받는다. 김 팀장은 “맛은 결국 기억이다”며 “맛에 대한 정확한 기억과 그걸 누구가 알 수 있도록 약속된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입사 3~4년차까지 1년에 한 차례씩 집중 교육을 받게 되면 이후에는 실무에서 트레이닝을 받아도 충분한 수준이 된다.

맛과 향에 민감해야 하기 때문에 연구원들의 생활도 일정부분 제한이 있다. 모든 연구원은 금연을 하고 평소 식습관도 맵고 짠 음식은 피한다. 시제품 테스트를 앞두고는 전날 음주도 하지 않는다. 김 팀장은 “하루 수십잔을 테스트는 공복 상태나 식사 후 2시간 이후 입안에 다른 음식물의 맛이 남아있지 않을때 한다”며 “그러다보니 식사 외에 간식이나 다른 음료를 마실 시간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카누 개발자만의 맛있게 카누를 마시는 비법이 있을까. 김 팀장의 레시피는 커피전문점의 제조 방식과 유사했다. 그는 “좋은 커피는 물에 잘 녹기 때문에 카누를 찬물에 바로 넣어도 물론 잘 섞인다”며 “하지만 조금 더 맛있게 마시려면 카누에 따뜻한 물을 조금 부어 에스프레소처럼 녹인 다음. 얼음이나 냉수를 넣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만들면 향이 훨씬 좋다”고 말했다. 같은 방법에 따뜻한 우유를 부으면 카페라떼로도 훌륭한 맛을 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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