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藝인] 미쳐야 미치는, 아니고선 닿을 수 없는 '균열의 몸뚱이'

노화랑서 개인전 연 달항아리 작가 '최영욱'
10여년 하루같이 화면에 옮기는 작업
젯소·돌가루 칠하고 갈아내길 100여번
인생 닮은 미세한 균열로 덮는 마무리
동시에 연 美 LA전시에선 '솔드 아웃'
"잘난 척하지 않는 삶, 좋아보이더라"
  • 등록 2020-11-16 오전 3:30:01

    수정 2021-11-26 오전 10:51:30

작가 최영욱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노화랑 개인전에 건 자신의 작품 ‘카르마201911-47’(2019) 앞에 섰다. “질릴 만도 한데 아직도 빠져 있다”는, 소박하지만 당당한 달항아리 중 한 점이다. 24점 전시작 중 가장 크다(180×160㎝)(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잘해야 본전이다. 달항아리를 품은 사람치고, 달항아리에 미쳐 있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 그 특출한 영역에서 또 저마다의 자태와 기량을 뽐낸다. 세상에 나온 달항아리는 달항아리대로, 세상에 낳은 작가는 작가대로. 마치 신의 경지를 가름하는 듯하다고 할까. 그래서 대충은 안 되는 거다. 미쳐야 미치니까. 아니면 저 허연 몸뚱이에 제대로 닿을 수가 없으니까. 빚든 그리든, 달항아리를 한다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 틈에서 경중을 따지는 건 웃기는 일이다. 허나 어쩌랴. 그래도 으뜸처럼 보이는데. 최고는 사양해도 최선은 부인하지 않는다. 그것을 예의로 알고 그것을 낙으로 삼으며 그것을 지표라 한다.

작가 최영욱(56). 그이를 만난 건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노화랑, 손끝이 아닌 붓끝에 올린 달항아리를 걸고 ‘최영욱’ 전을 열고 있는 곳이다. 늘 그러하듯 고즈넉한 향을 내뿜는, 캔버스에 올린 달항아리 24점을 데리고 ‘마실 나오듯’ 나섰다. 요란하지도 소란하지도 않다는 얘기다. 노화랑 개인전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1992년부터 40회에 달하는 개인전 경력만 놓고 볼 때 인사동 터줏대감인 노화랑과 뒤늦게 연결된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이유가 있겠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최영욱의 ‘카르마202010-28’(2020). 미세한 균열로 채운 달항아리의 몸뚱이 아래 ‘우연 80%에 덧칠 20%를 얹었다’는 산과 물이 어렴풋이 보인다. 달항아리에 들인 산수는 오래전 작가가 그리던 풍경이기도 하단다(사진=노화랑).


운명도 숙명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라면 할 말이 없다. 그가 처음 달항아리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1991년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10여년 입시미술학원을 운영했다. 말은 안 했지만 작가라면 대부분 발목을 잡는 그 이유였을 거다. 기반이 닦이면 작품에 매진하자, 그랬을 거다. 그러다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했더란다. 그래서 다 접고 돌연 미국행을 감행했다. ‘이제 내 붓을 쥐겠다’며. 뭘 하겠다는 건 없지만 뭘 하진 말아야겠다는 건 분명했을 터. 그런 그이의 눈에 문득 들어온 게 있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한국관에 덩그러니 놓인 달항아리. 그 처량한 모습에 순간 빠져들었단다. “내 처지 같구나” 싶어서. 그 먼 길을, 그 먼 시간을 돌아돌아 비로소 마주한 운명이라니. 그 뒤는 생각할 수 있는 그대로다. 10년을 훌쩍 넘겨 달항아리만 바라보고 달항아리만 그리고 달항아리로 살아남았다.

그렇다고 결과에 취해 그 인연을 허투루 대하지도 않았다. 그이가 한결같이 붙이는 작품명이 그리 말한다. ‘카르마’(Karma)라고. 힌두교와 불교에서 말하는 ‘업’ ‘업보’ ‘숙명’이란 뜻이다. 작가 자신이 달항아리를 만난 그 순간을 이렇게 기억하려 했을 거다.

노화랑의 ‘최영욱’ 전 전경. 모두 같은 달항아리지만 어느 하나도 같지 않은 달항아리 24점이 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한 겹씩 얇게 올려… 수행으로 쌓은 항아리

중성적인 매력. 누구는 풍성한 몸체에 여염집 아낙이 보인다고 했고, 누구는 진중한 무게에 듬직한 사내와 마주선 듯하다고 했다. 색도 없고 무늬도 없으니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소박하고 수수하니 눈에 띄지도 않는다. 하지만 어디서도 꿀리지 않는다. 감추지 않아 의젓하고, 가릴 게 없어 당당하다고 할까.

물론 이 모두를 제대로 표현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달항아리는 하나지만 모두가 제각각인 이유다. 그렇다면 이 항아리는 어떤가. 단아한 자태에 올린 청아한 색감, 손가락을 부르는 질박한 질감. 이뿐인가. 볼록한 배에 조금만 힘을 주면 당장 튀어나올 듯한 입체감도 품었다. 화폭에 둥실 뜬 ‘최영욱의 달항아리’ 말이다. 만약 여기까지 이미 봤다면, 이젠 하나를 더 봐야 한다. 그이가 항아리에 넣은 풍경 말이다. 작가의 달항아리는 배 아래 쪽에 희미하게 산과 물을 품고 있다.

“우연하게 나온 게 80%다. 여기에 20%쯤 보이는 대로 좀더 묘사한다. 산모양이 보이면 산을, 물결이 보이면 강·바다로 살리는 식이다.” 하지만 이도 마음이 전하는 일이 아닌가. 누가 보는가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 거다. “남해면 물, 강원이면 산, 고향의 풍경처럼 보인다더라.” 심경을 비춘 거울이 따로 없다. 처음엔 그저 외형에 혹했다면 이젠 내면을 들여다보라 일러주는 듯하다.

작가 최영욱이 노화랑 개인전에 건 자신의 달항아리들 앞에 섰다. 작가는 “명암처리를 어둡게 하면 볼륨이나 실제감이 확 사는데 재미는 없더라”며 “있는 듯 없는 듯 조절해 깊이감을 만든다”고 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푸릇하고 불그스름하며 허연 몸뚱이는 젯소와 돌가루가 만든단다. 젯소를 칠해 형태를 잡고 돌가루와 수정안료를 섞어 두께를 쌓아간다. 칠하고 사포로 갈아내고 다시 칠하고 갈아내고, 100번 정도 반복해야 도톰한 두께가 나온다. 한두 번에 올리는 방법이 왜 없겠나. 그런데 그이는 돌아간다. 일부러 한 겹씩 얇게 올린다. “덕분에 겸손해졌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작업이 안 되더라. 마음에 화가 있어도, 몸이 편치 않아도 안 되는 작업이더라.” 결국 마음과 몸이 가장 달항아리스러워야 한다는 거다. 수행, 바로 그거였다.

보고 그리는 모델이 따로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예전과 요즘 작가들이 만든 달항아리를 열 점 정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미지만 본다. 그리는 건 상상이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다. ‘최영욱의 달항아리’만이 가진 게 있으니 ‘크랙’(균열). 그이의 달항아리 거죽은 수없이 미세한 균열로 덮여 있다. 온전히 형체를 완성한 뒤 세필로 금을 긋는 의식을 치르는 셈인데. 기억이라 해도 되고 세월이라 해도 될 것들이 작고 크게, 직선 곡선으로, 둥글고 날카롭게 달항아리 몸에 상처를 내고 있다.

최영욱의 ‘카르마20209-33’(2020) 부분. 가는 붓으로 일일이 그려넣은 미세한 균열이 보인다. 작가는 수없이 갈라지고 이어진 선들이 “사람 사는 인생길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사진=노화랑).


△“잘난 척하지 않는 삶이 좋아 보이더라”

작가의 개인전은 지금 다른 곳에서도 열리고 있다. 미국 LA의 ‘헬렌J갤러리’다. 반응은 그쪽에서 먼저 왔다. 몸은 묶여 작품만 보낸 그곳에서 25점이 ‘솔드아웃’ 됐다. 추가로 7점을 더 보냈다. 달항아리를 알아보는 서양인의 반응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그 얘기는 이제 그만 하자”며 손사래를 치지만 아마 작가인생 끝까지 따라다닐 일이 있다.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세운 빌&멀린다게이츠재단에서 2011년 그이의 달항아리 3점을 샀더랬다. “마이애미 작은 갤러리에 내놨던 80호짜리 그림 세 점을 팔았다. 재단이 건물 완공을 앞두고 작품을 보러 다니던 중에 눈에 띄었나 보더라.” 달항아리를 그리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초창기에 힘이 되고, 계기가 됐다”고 했다.

최영욱의 ‘카르마20205-21’(2020). 노화랑 개인전에 건, 그간 ‘못 봤던’ 작품이다. 달항아리들을 화폭에 한가족처럼 단란하게 세우고 작품세계에 변화를 줬다(사진=노화랑).


팔린 것도 팔린 거지만 작업량도 놀랄 만하다. 현재 개인전 중인 출품작만 50점을 넘겼으니까. 게다가 작가는 올해 이미 서울과 부산에서 다른 개인전을 열었더랬다. 파주 출판단지에 있다는 작업실에 박혀 하루 10시간씩 매달린다는 열의 덕분인가. “40∼50호(폭 1m 남짓)면 열흘 정도 걸린다”고 했다. “질리지 않는가” 물었더니, 무심한 작가는 “아직도 매력에 빠져 있다”고 한다. “잘난 척하지 않는 삶이 좋아 보이더라. 나도 그리 살아보자 했다.” 그이의 달항아리 작업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하나지만 하나가 아닌, 같지만 같은 건 하나도 없는.

어디 작가뿐이랴. 내 몸을 기울이고 머리를 숙이거나 우러러봐야 비로소 보인다. 단순하지 않고 겸손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뻣뻣한 이기심으론 안 되는 일이다. 세상의 달항아리가 그렇고, 작가의 달항아리는 더 그렇다. 전시는 25일까지.

작가 최영욱이 노화랑 개인전에 건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 작가는 “달항아리처럼 살겠다 하다보면 언젠가 그럴 때가 오지 않을까 싶다”며 “덕분에 삶이 소박하고 겸손해졌다”고 말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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