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 석상에 생명을 넣는다고 상상하면 짜릿해요"

하이퍼리얼리즘 화가 정중원
에세이 '얼굴을 담다' 출간
"초상화 우리 일상 도처에 있는 친근한 것"
  • 등록 2020-07-06 오전 6:15:01

    수정 2020-07-06 오전 6:15:01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호메로스의 대리석상을 보면서 돌덩어리로 남아 있는 그를 실제 고대 그리스에 살던 노인의 모습으로 재현하면 어떨까 상상해봤는데 너무 짜릿했어요.”

사진보다 더 실제 같은 초상화로 유명한 화가 정중원(33).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이데일리와 만난 그는 “진짜보다 진짜 같은 복제품으로 원본과 복제에 대한 경계에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 즐겁다”고 극사실주의 초상화를 그리는 이유를 말했다.

정 작가는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부터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 고흐 등 역사적 인물, 심지어 그리스 신화의 비너스까지 마치 살아 숨 쉬는 존재처럼 생생히 되살려 냈다. 고흐처럼 자화상을 통해 어렴풋이 생김새는 알지만 실제 얼굴은 모르는 사람의 얼굴을 재해석을 통해 고해상도 카메라로 찍은 것 같은 초상화로 뚜렷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자화상의 복제품이지만 털 한 올까지 살려 그린 그림은 마치 실제 고흐 얼굴인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자신의 초상을 직접 SNS에 공유하며 놀라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정 작가는 에세이 ‘얼굴을 담다’(민음사)를 발간하고 작가로서 독자들을 만났다. 책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최첨단 로봇 시대의 초상까지 얼굴에 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그는 책에서 ‘얼굴’이야말로 인간의 자아·성격·욕망 등 인류의 모든 것과 연결돼 있다며 얼굴에 대한 이해는 ‘인간 이해’의 첫 단계라고 말한다.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리면서도 정 작가는 본인과 모델만 아는 비밀을 그림 속에 숨겨두기도 한다. 그는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를 그리는데 사료를 보면 와일드의 눈동자는 파란색이지만 그림을 그릴 때는 참고로 한 모델의 눈동자 색을 따라갔다”며 “미세한 부분이지만 마치 이게 실제인 양 장난을 치는 게 재밌었다”며 웃었다.

정 작가는 책을 통해 초상이 갖는 개인적·사회적 맥락에 대해 얘기한다. 그는 “초상은 미술관에만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지갑 속 지폐의 인물들, 연인의 사진, 명동 거리에서 보는 유명인의 모습도 다 초상이다”고 설명했다. 각 초상이 어디에 있는지는 사회와 개인에 대해서 많은 걸 설명하는데 한 예로 지폐 속 초상이 500년 전 사람인 점은 근현대사에 대한 합의가 안 된 우리 모습을 드러낸다고 했다. 그는 책 속에서도 ‘사회와 초상화’ 부분을 가장 공들여서 썼다고 했다.

책을 쓰면서 아쉬운 점으로는 도판을 많이 싣지 못한 점을 꼽았다. 정 작가는 “책에서 설명한 초상화 중 도판을 싣기 위한 저작권은 돈을 준다고 해도 살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며 “단독 저서가 아니면 허락을 안 해주는 경우도 있고 저작권료가 어마어마하게 비싼 경우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영국 왕실의 초상화에 대해 얘기하며 엘리자베스 2세와 왕세손비 캐서린 미들턴의 초상화를 언급했는데 왕실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화에 대해서만 허락을 했다”며 뒷이야기도 전했다.

연극에도 관심이 많아 2011년부터 극단에도 서고 있는 정 작가는 “연극과 초상화를 그리는 과정에 본질적으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며 “연극도 결국 내가 생각하는 극 중 인물을 연기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연극을 하면서 만난 개성 있는 사람들에게 초상화에 대한 영감을 많이 받고 있다”며 “램브란트, 미켈란젤로, 마르크스 등 그리고 싶은 사람들의 목록이 가득하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정중원 작가(사진=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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