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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국내 법률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로, 규모는 커지지 않는데 변호사수만 늘어나고 있어 위기라고 합니다. 유일하게 외국관련업무만 커지고 있는데 이 시장은 외국 로펌들이 장악하고 있구요. 이 때문에 법률시장에서의 무역 역조는 빠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이번 세계변호사협회(IBA) 서울총회가 우리 법조계가 국제화되는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서울이 싱가포르, 인도,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4번째로 IBA 총회를 유치하는데 산파역할을 하고 현재 총회 조직위원장을 담당하고 있는 최정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15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 신세인 국내 법조계가 음악이나 영화처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번 서울총회가 그 방향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길 바랐다. IBA 총회는 193개국 변호사협회 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국제 기준을 정하는 한편 특정 사안에 대한 성명서를 내거나 포럼을 개최하며 네트워킹을 다지는 일종의 `변호사업계의 올림픽` 또는 `변호사업계의 유엔총회` 같은 행사다.
신청 후 9년만에 총회 유치, 취소 직전 위기도
최 변호사에게 22일부터 막을 올리는 서울총회는 사실 기적과도 같은 사건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 1957년 IBA에 가입했지만 실제 본격적인 활동을 한 건 법률시장 개방을 앞둔 지난 2007년부터였다. 2년 뒤 김평호 대한변협 회장이 취임하면서 IBA 총회를 서울에서 유치하기로 하고 2010년 유치위원회까지 출범시켰지만 당시엔 모두가 `불필요한 노력과 시간만 낭비한다`며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서울이 총회 유치에 성공하자 당시로선 IBA에서 존재감도 없던 한국이 총회를 유치한 것에 다들 놀랐다는 게 최 변호사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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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난 2017년 북한의 핵 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위협이 고조되자 IBA 이사회는 사전 통보도 없이 2019년 총회 장소 변경의 건을 상정했다. 최 변호사는 “이를 막기 위해 이사들을 한 명씩 붙잡고 `한반도의 위기는 늘상 있는 일이고 북한도 노이즈를 만들기 위해서 저러는 것이니 곧 잠잠해질 것`이라고 설득했다”며 “이 과정에서 IBA 회장이 나서 `법치주의를 핵심 가치로 삼는 IBA가 (총회 개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건 말이 안된다. 법치주의와 인권이 없는 북한과 맞닿은 최전선에서 우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한국 변호사들을 위해 우리가 지원하자`며 동조해 준 게 큰 힘이 됐다”고 되돌아봤다.
이토록 총회 유치에 목을 멨던 것은 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 변호사는 “무엇보다 한국 법조계의 국제화를 앞당기려는 게 최우선 목표”라며 “중견은 물론 청년 변호사들까지도 이를 계기로 해외로 눈을 돌릴 수 있도록 하는 기폭제가 되고자 했다”고 말했다. 또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어려운 변호사시험을 통과한데다 굉장히 똑똑한 우리 변호사들을 세계 무대에 알리는 기회도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이번 총회 기간 중 열리는 포럼행사 내 200개 세션에 국내 변호사 170명을 연사로 세우기로 했다. 통상 10명 정도가 연사로 참여했던 예년 총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다.
법률 무역역조 심각…해외 진출 디딤돌 기대
최 변호사는 “국내 시장에서 일하는 외국 변호사가 2500명이나 되지만 국내 자격증을 가지고 해외에서 일하는 한국인 변호사는 20명도 채 안된다”며 “중국은 변호사가 40만명인데 정부가 10년내 100만명까지 늘리기로 했고 현재 조선족 등 우리말을 자유자재로 하는 변호사만 5000명에 이른다고 하니 굉장한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정체된 국내 법률시장에서 유일하게 커지는 게 외국관련업무인데 우리 로펌이 외국 기업으로부터 버는 돈이 8000억원인데 비해 우리 기업에 외국 로펌에 지급한 돈은 1조7000억원이나 되니 법률수지 적자가 크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우리 기업에서 외국 로펌으로 간 돈은 불과 10년만에 6000억원에서 1조7000억원으로 늘었다.
그는 “우리 경제는 무역의존도가 높다보니 앞으로 외국관련업무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여 우리에겐 위기인 동시에 기회”라며 “과거 불가능할 것 같던 우리 영화와 음악, 전자산업이 글로벌시장에서 성공한 것처럼 우리 법조계도 얼마든지 해외로 나갈 수 있다”며 “이제부터라도 해외로 눈을 돌리고 밖으로 나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최 변호사는 “이번 총회에 참석하는 변호사 중 70%가 한국에 처음 온다고 들었다”며 “변호사들은 각 국에서 기업들을 컨설팅해 해외 투자와 거래를 도와주는 중요한 인물들인 만큼 총회를 통해 한국이 얼마나 발전했고 사업하기 좋은 곳인지를 알림으로써 국익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