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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자녀들 미국 유학 보내면 뭐 합니까? 영주권이 없으면 현지서 취업할 수도 없는데요.”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50만달러(원화 약 6억원)가 아니라 90만달러(10억8000만원)를 투자하고 가야 한다니까요.”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은행 소강당은 주말 오후인데도 50여석 가운데 빈 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붐볐다. 한 이민대행업체가 주최한 미국 투자이민설명회를 듣기 위해서다. 주로 40~50대 중년들이 주를 이뤘지만 몇몇 30대 부부들도 눈에 띄었다. 업체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택지조성사업과 뉴욕 맨해튼 관광호텔사업 등 투자상품을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자녀를 조국 (법무부 장관) 딸 같은 스펙이 아닌 진정한 스펙을 갖춘 글로벌 인재로 키워 실리콘밸리 기업에 취직시키시라”고 강조했다.
50만불→90만불 미국 투자이민 상향 `막차 타자`
미국 투자이민제도인 EB-5는 미국인들이 투자하기에 다소 리스크가 있는 부동산, 금융 등 사업에 외국인의 투자액을 유치하고 영주권을 부여하는 프로그램이다. 국내에서 관심이 높은 간접 투자이민은 미국 이민국에서 승인한 지역별 센터를 통해 50만달러를 투자하고 10명 이상 현지 고용 창출 효과를 발생하는 조건으로 영주권을 준다.
지난 19일 미 하원은 9월30일 일몰 예정이었던 EB-5 프로그램을 지속시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는데 현재 상원 통과와 대통령 승인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미 정부는 지난 1992년 EB-5 시행 이후 이를 통해 많은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 왔기 때문에 이 제도를 폐지하지 않고 승인을 확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최근 국내에서 잇달아 미국투자이민 붐이 일고 있는 이유는 투자에 필요한 종잣돈이 11월부터 대폭 오르기 때문이다. 11월21일부터 시행되는 새 결의안은 간접투자이민 시 필요한 투자금을 50만달러에서 90만달러로 곱절 가량 상향했기 때문이다. 실제 이달 중에는 서류작업을 시작해야 11월21일 전에 접수를 완료할 수 있다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한 이민대행업체 관계자는 “관련 증빙자료를 모으는데만 2~3주가 걸리기 때문에 준비 기간이 빠듯하다”며 “지금 시작하면 10월말께 돈을 송금하고 11월초쯤 최종 서류를 이민국에 접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건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을 때 이야기고 미국에서 증빙 자료를 빡빡하게 보기 때문에 반려라도 되면 기간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방에서도 상경…투자금 회수는 ‘하면 좋고’
이날 지방에서 설명회를 듣기 위해 올라왔다는 40대 여성 박모씨는 “막내 아이가 미국 대학 입시를 준비 중인데 유학만 그냥 다녀오는 것보다 현지에서 취업까지 했으면 해서 알아보고 있다”며 “설명회를 다니며 투자금까지 회수할 수 있는 안전한 투자처가 어디일지 고민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30대 남성 이모씨는 “(상향 후 투자액) 90만달러는 좀 부담스러운데 50만달러는 회수 안 해도 상관 없다”며 “여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 중에는 50만달러 정도면 돌려받으면 좋고 못 받아도 영주권값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강동관 이민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에이전시를 통해서 투자하게 되면 수수료가 비싼 대신 비교적 안전성이 보장된다고 볼 수 있다”며 “그러나 투자처가 고용효과를 제대로 창출할 수 있는 곳이어야 결국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기 때문에 대행업체들의 말만 믿지 말고 투자처가 제대로 된 곳인지 직접 확인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