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사는 이 자산을 누군가가 나중에 더 높은 가격으로 살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어떤 가격이든 정당화한다는 이론이다. 자산의 가격이 펀더멘털이 아닌 시장참여자들의 비이성적인 기대로 형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코스피지수가 예상보다 빠르게 3000선을 넘고 3266선까지 터치하자 이 이론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개인투자자들이 이 상승장에 올라타지 않으면 ‘벼락거지’가 될 것 같은 불안감에 대거 증시에 뛰어들면서 이같은 믿음은 더 강해진 듯하다.
그럴만한 게 주식매수 대기자금인 투자자예탁금은 70조원에 달한다. 작년 1월부터 개인투자자들이 코스피와 코스닥 합쳐 78조원어치를 순매수했는데도 증시로 들어올 수 있는 자금이 그만큼 더 남아있다는 뜻이다.
국내 은행권 예금에 머물러 있는 자금 1600조원 중에 주식시장으로 이동한 자금은 해외주식과 예탁금을 다 합해도 10%가 채 안되기 때문에 더 들어올 여력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세론자들이 증시 추가 상승을 점치는 이유 중 가장 1순위로 꼽는 게 바로 이 ‘유동성의 힘’이다.
모든 사회·경제 이슈가 주식으로 통하기도 한다. 최근 한 아파트 입구에 붙어 있는 안내문 사진이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됐다. “이 나라의 경제를 유지합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는 것은 면해야 할 것 같아요”로 시작한 이 안내문은 이재용 부회장을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자유의 몸을 만들어달라는 국민청원 주소를 적고, 의사가 있는 분은 꼭 참여해달라며 정말 고맙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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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에 올라온 이 청원은 6만5000명 이상이 동의한 상태다. 이 부회장의 법정구속이 그저 뉴스를 통해 접하는 법조 이슈가 아니라 당장 내가 갖고 있는 삼성전자 주가와 연결되고 자산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동학개미가 지난해 1월부터 이날까지 삼성전자를 15조5000억원어치 이상 사들이면서 순매수 1위에 올려놨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삼성전자의 모든 뉴스가 개미의 자산과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정도로 주식투자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면 누군가 내가 갖고 있는 주식을 더 비싼 가격에 사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게 자연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유동성의 힘을 과신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된다. 마냥 좋을 것 같다가도 한순간에 돌변하는 게 투자심리다. 과거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이 꺼질 때에도 비슷했다.
특히 최근 미국 국채 금리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코로나19 펜데믹때 0.5%선까지 떨어졌던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어느덧 1%대로 올라왔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와 물가연동채(TIPS)의 금리차를 나타내는 기대인플레이션(BEI)도 2년여만에 2%를 넘어섰다.
때문에 미국 내에서는 슬슬 통화정책 정상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19에서 좀 벗어나고 경기가 정상화될 수록 속도를 낼 것이다. 유동성 흡수에 대한 시그널만 나와도 시장 심리는 확 바뀔 수 있다.
더 큰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지금 가격이 유동성 요인 빼고 정당화할 수 있는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산업구조의 변화, 그리고 혁신 여부, 실적이 핵심이다. 돈은 ‘더 큰 바보’의 손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