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이정훈 사회부장] 영화 <뷰티플 마인드>의 실존 인물인 존 내쉬는 나이 서른에 수학자들에게 해결 불가능이었던 난제들을 하나씩 풀어내며 수학계의 떠오르는 별로 불렸다. 약관 21세에 쓴 27쪽짜리 논문으로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지만, 20대 초반에 발병해 무려 35년간이나 지속된 조현병에 시달린 인물이었다.
병을 앓는 동안 그는 현실과 환영의 경계를 헤매며 지옥같은 삶을 살았지만 끝까지 곁을 지켜준 아내 얼리샤의 조력 덕에 병원 치료를 병행하면서 후일 연구성과를 인정받게 됐다.
최근 진주에서 자기 집을 불 지른 뒤 대피하던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죽이고 13명을 다치게 만든 피의자 안인득 역시 과거 5년간 무려 68차례나 조현병 진료를 받은 환자였다. 다만 그는 범행 전 33개월 동안엔 전혀 치료를 받지 않았고 병원 진단 마저도 거부해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여전히 조현병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이 짙은 편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2.5%가 조현병 환자에 대해 “타인에게 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고 무려 65.8%는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사회적 낙인효과 때문인지 실제 조현병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전체 환자 넷 중 한 명꼴인 12만여명에 불과하다.
생활형편이 어려운 조현병 환자는 정부의 의료급여 지원비만 갖고는 매일 복용하는 치료제를 쓰기도 어렵다. 형편이 괜찮더라도 환자 본인이 거부할 경우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길이 사실상 없는 상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퇴원한 조현병 환자의 병력이나 퇴원 사실 등을 지역정신건강센터에 등록할 수 있는 길도 법으로 막고 있다.
더이상 개인정보 보호와 인권 존중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조현병을 개인이나 가족 차원에서 내버려둘 순 없는 노릇이다. 사회적 관심 속에서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받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조현병 환자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의 편익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안을 찾아야할 때다. 조현병 환자에 대한 사후관리는 물론 보건당국을 중심으로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간 유기적 협조로 환자 정보를 공유하면서 반사회적 행동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