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vs 기생충은 생각하지 마

세금폭탄·경제민주화, 역대 선거 프레임 성공사례
구도·인물·바람 선거 3요소 중 가장 중요한 건 ‘구도’
‘야당심판론 vs 정권심판론’ 여야의 식상한 프레임 전쟁
  • 등록 2020-02-17 오전 6:03:00

    수정 2020-02-17 오전 6:03:00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들었을 때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설적으로 코끼리다. 세계적인 인지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 교수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핵심 내용이다. ‘미국의 진보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책은 공화당의 상징인 ‘코끼리’를 비꼬면서 정치적 프레임의 주도권을 강조한다.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놓고 사람에 따라 ‘북한의 개혁·개방을 돕는 햇볕정책’ 또는 ‘김정은 독재를 지원하는 대북 퍼주기’로 여기는 건 바로 프레임 효과다.

책은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여야 정치인들의 필독서다. 프레임의 가치는 선거국면에서 잘 나타난다. 참여정부 시절 보수진영의 ‘세금폭탄론’이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아무리 세금폭탄이 아니라고 설명한들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세금폭탄’이라는 단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 2017년 대선 TV토론 당시 “제가 MB 아바타입니까”라고 말한 건 스스로 무너진 건 정반대 사례다.

선거의 3대 요소는 구도·인물·바람이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구도다. 선거구도가 어떻게 짜여지느냐에 따라 대략적인 판세가 결정된다. 여야가 프레임 전쟁에 올인하는 이유다. 아무리 좋은 후보를 내세운들 구도 자체가 나쁘면 당선이 쉽지 않다. 탄핵역풍이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던 2004년 17대 총선이 대표적이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2년 총선·대선에서 ‘경제민주화’라는 프레임으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 것도 참고 사례다. 상대의 프레임 전쟁에 말려들면 필패다. 불리한 판을 뒤집는 것은 유권자의 이목을 사로잡는 새로운 프레임이 나올 때 가능하다.

4월 총선을 앞둔 여야의 프레임 전쟁은 다소 식상하다. 민주당은 “국정을 농단한 적폐세력인 한국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며 ‘야당심판론’을 앞세운다. 국정운영의 궁극적 책임이 집권당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어불성설이다. 한국당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이 부동산·경제·안보를 망친 것도 모자라 검찰 장악과 세금 퍼주기로 나라를 망친다”며 ‘정권심판론’을 내세운다. 모든 건 정부가 잘못했다는 논리다. 여야 입장에서는 총선국면에서 당연한 프레임이다. 다만 집토끼로 불리는 콘트리트 지지층만을 너무 의식한 것이다.

‘야당심판론 vs 정권심판론’. 자세히 뜯어보면 네거티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전히 ‘산업화 vs 민주화’ 대결구도의 낡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여야 각당 내부에서 ‘공천학살’이라는 내부잡음까지 커지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전통적 지지층에게만 기대는 낡은 프레임으로는 2% 부족하다. 여야의 목표인 과반 달성을 위해선 외연 확장이 필수적이다. 봉준호 감독은 ‘반지하’라는 가장 한국적인 소재로 자본주의와 계급문제를 풍자하며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영화 ‘기생충’에는 △빈부격차 △사회 양극화 △주거난 △청년실업 등 한국사회의 난제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여야 정치권이 성찰하고 궁극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들이다. 영화 ‘기생충’을 벤치마킹해서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하면 ‘저녁이 있는 삶’과 같은 비교불가 수준의 프레임이 만들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지나친 기대일까? 분명한 건 프레임 전쟁의 승자가 4월 총선에서 웃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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