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무대 男다른 여성연출가 주목하라

‘여장부’ 강박관념 버리고
개성만점 스타일로 승부
다양한 언어 실험 문삼화
경청의 힘 보여준 류주연
사회 의식 충만한 부새롬
연극계 문제 고한 구자혜
과감한 性 다루는 김수정
  • 등록 2017-03-14 오전 5:40:00

    수정 2017-03-15 오전 2:13:50

올해 연극무대도 다섯명의 여성연출가에게 주목해야 한다. 사진왼쪽부터 연출가이자 김수정 극단 신세계 대표, 부새롬 달나라동백꽃 공동대표, 문삼화 극단 공상집단 뚱딴지 대표, 류주연 극단 산수유 대표,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 대표 구자혜 작가.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오해 하나. 술·담배를 잘할 것이다. 오해 둘. 남자보다 카리스마가 넘친다. 오해 셋. 똑똑하거나 금수저, 그래서 해외유학파일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남성보다 앞서가는 여성을 볼 때 자주 갖는 편견들이다. 여성의 사회진출은 늘었지만 ‘유리천장’은 여전하다. 실제로 기업평가기관 CEO스코어에 따르면 30대 그룹 중 올해 임원인사를 단행한 18개 그룹의 전체 임원승진자 1517명 가운데 여성은 37명으로 2.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문화·예술분야에서 연극연출은 여성의 진출이 가장 미약한 곳이었다. 남성연출가란 말은 없지만 여성연출가란 굴레가 쉽게 씌워지는 곳도 ‘연극판’이었다. 그런데 최근 2~3년 사이 여성연출가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문삼화(50)·류주연(45)·부새롬(41)·구자혜(35)·김수정(34)이 주축이다. 모두 ‘여성’이면서 2000년대 이후 데뷔한 연출가이자 각자의 연극적 개성과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에서도 특이할 만하다.

김창화 상명대 연극학과 교수는 “연극은 수십명의 배우·스태프와의 공동작업이다. 여성은 보통 남성연출가의 조력자인 조연출로 먼저 경력을 쌓으며 배웠다면 요즘엔 곧바로 데뷔가 가능해진 점도 눈여겨볼 지점”이라며 “특히 희곡을 직접 쓸 줄 알고 각색·번안능력은 물론 기술보다 분석 연출을 잘한다는 점도 요즘 여성연출가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여성의 장점, 강점으로 승화…“자기 최적화”

과거에는 대체로 남성연출가가 바라본 여성연극이 많았다. ‘위기의 여자’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등을 통해 국내 연극계에 여성연극의 붐을 일으킨 인물도 극단 산울림 대표인 연출가 임영웅이었다.

여성연출가의 계보는 그리 길지 않다. 한국 최초의 연극부문 여성연출가 1호에는 2005년 작고한 강유정을 꼽는다. 1966년 국내 최초의 여성극단인 ‘극단 여인극장’을 창단해 39년간 이끌어왔으며 생전에 여성의 삶을 리얼리즘 방법론으로 다룬 100여편을 연출했다. 그 뒤로는 한태숙·김아라·류근혜 등이다. 2000년대 이후에는 문삼화·류주연을 비롯해 부새롬을 거쳐 2010년 뒤 데뷔한 젊은 신진연출가 구자혜·김수정으로 이어진다.

김 교수는 “문삼화는 다양한 언어를 실험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끌고 나가는 저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류주연에 대해선 “여성연출가 중 연극성의 깊이를 가장 잘 이해한다. 날카로우면서도 균형 잡힌 안목으로 사회이슈의 본질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짚어낸다”고 했다. 이은경 연극평론가도 같은 연배인 두 연출가에 대해 “두 사람 모두 이전에도 주목받아 왔고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류주연에 대해선 “텍스트를 잘 고른다. 텍스트를 자기의 최적화한 언어와 스타일로 잘 보여주는 머리가 좋은 연출가”라고 칭찬했다. 부새롬에 대해서는 “사회적 고민과 의식을 저변에 깔고 있다. 고전을 번안하는 데서 출발했지만 최근에는 현실에 뿌리를 둔 창작극을 많이 올리며 꾸준히 자기 언어를 찾아가는 중”이라고 평했다.

극단 산수유의 대표인 류주연은 스스로에 대해 “나는 팔랑귀다. 귀가 얇고 포기가 빠른 편”이라고 소개했다. “주장이 세지도 않다. 초반엔 카리스마 있는 척 흉내낸 적도 있지만 배우와 생각이 다를 때는 여러 차례 설득하고 회유한다”고 웃었다. 늦깎이 연출가인 류주연의 전공은 국문학이다. 연극을 하고 싶어 26살에 무작정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뛰어들었다. 극단 백수광부로 연극계에 입문했고 공연예술아카데미에서 연극을 배웠다. 류주연은 “이런 콤플렉스가 강점이 된 것 같다”며 “술·담배는 못하지만 연습할 때 배우 의견을 많이 듣는 편이다. 지금 생각하면 카리스마가 없는 게 오히려 긍정적으로 흘러간 타입”이라고 했다.

△지금, 주목받는 이유…“자기검열 無”

다수의 연극평론가는 요즘 여성연출가의 특징으로 “자기검열이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아울러 진지한 주제를 말하는 데 있어 유머와 위트도 잊지 않는다고 했다. 연극연출가 윤한솔은 “과거 여성연출가는 일종의 남자였다. 남자의 카리스마를 대체한 유형이었다면 지금은 결이 다르다. 우리가 페미니즘을 학습했다면 그들은 굳이 학습하지 않아도 되더라. 특히 젊은 여성연출가는 여성이니까 다르게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보이더라. 자기 설득 과정이 없다”고 귀띔했다.

부새롬 연출은 김은성 작가와의 결합이 시너지를 내 함께하는 작품마다 호평을 얻고있다. 지난해 초연한 연극 ‘썬샤인의 전사들’ 한 장면(사진=두산아트센터).
구자혜·김수정 등 신진 여성연출가는 내(여성) 얘기를 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 평론가는 “두 사람 모두 하고 싶은 것을 많이 시도하고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위트도 다룰 줄 안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용기와 에너지가 돋보인다”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린다”고 했다.

윤 연출은 ‘대학로의 사고뭉치’라 불리는 김수정에 대해 “영리한 연출을 한다”며 ‘그러므로 포르노’ ‘보지체크’ 등을 예로 들었다. 연극 ‘보지체크’는 원작 ‘보이체크’에서 ‘이’자를 빼고 ‘지’를 넣어 여성의 성기를 의미하는 순우리말로 만들었다. “김수정은 겉치레에 대한 강박에서 비켜나 있다”며 “여성이 하면 남성보다 과감할 수 있는데 여성연출가로서 이 부분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연극무대도 이들의 작품에 주목해야 한다. 올 상반기·하반기 무대가 꽉차 있다. 문삼화 연출이 ‘소나기마차’로 포문을 연 데 이어 류주연은 올 7월 국립극단 무대에 오른다. 배삼식 작가의 신작 ‘1945’(가제)를 통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민초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낼 예정이다.

김수정은 오는 11월 ‘파란나라’를 재연한다. 구자혜는 그동안 공론화되지 못했던 ‘연극계 성폭력’에 대해 건드릴 예정이다. ‘가해자 탐구_부록:사과문작성 가이드’(남산예술센터 4월 21~30일)란 작품을 통해 연극계와 관련한 발언 자체가 없는 현상을 꼬집을 계획이다.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은 “구자혜는 가해자를 지속적으로 탐구한다. 이번에는 예술가라고 불리는 자들의 자기도취적인 성폭력, 이 문제를 고발할 경우 창작의 기회를 다시는 얻을 수 없다는 공포를 조장하는 예술계의 부조리에 집중한다. 여성이 바라보는 연극계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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