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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영원과 불멸에 이르는 길

정재형 동국대 교수·영화평론가
  • 등록 2020-07-14 오전 5:00:00

    수정 2020-07-14 오전 5:00:00

“당신과 사는 일생 단 일초도 떨어져 있지 않을 거야.”

시간여행자와 그 아내, 딸의 인생을 그린 영화 ‘시간 여행자의 아내’(The Time Traveler’s Wife, 2009)에 나오는 아내 클레어의 대사다. 아내는 죽음 직
전의 남편 앞에서 더 이상 헤어지기 싫다는 뜻으로 위의 대사를 한다. 이 대사는 그녀의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영원, 불멸을 꿈꾸는 인간은 시간의 제약 속에서 잠시 서로 스쳐지나갈 뿐이다. 비록 사랑하는 부부이고 자식일지라도 인간은 지구라는 별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이고 순간만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슬픈 존재들이다.

어려서 엄마를 비극적으로 잃고 난 후 주인공 헨리는 시간여행이라는 병을 앓는다. 엄마를 잃은 충격으로 인해 그에게 특별한 초능력이 생긴 것이다. 그는 과거 혹은 미래로 시간을 왕래할 수 있다. 그가 원해서 행해지기도 하지만 뜻하지 않게 수시로 발생해서 그를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 헨리는 어린 소녀 클레어 앞에 나타나 다시 올 거라고 말한다. 그 말을 진짜 믿고 기다려온 순수한 소녀 클레어는 10년 후 정말 다시 나타난 헨리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결혼하고 애를 키우면서도 헨리의 나날은 피곤하기만 하다. 즐거운 시간이 지속되다가도 헨리는 자기도 모르게 사라진다. 그는 끝이 없이 과거와 미래를 왕래하면서 시간여행을 한다. 처음엔 엄마의 죽음을 돌이키려고 시작한 일이었다. 거듭되는 시간여행에 중독된 헨리의 욕망은 엄마를 죽지 않게 하겠다는 것, 즉 불멸에 대한 추구였다. 하지만 죽음만큼은 아무리 시간여행을 해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에 빠진다.

제목처럼 영화는 시간 여행자 보다 그 아내의 입장을 더욱 부각시킨다. 헨리처럼 시간 여행할 능력도 없는 평범한 아내는 항상 사라졌다 나타나는 남편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입장에 점점 화가 난다. 남편이 좋아서 시간 여행을 하는 게 아니란 걸 이해하면서도 시간 여행자의 아내라는 특별한 운명이 가혹하게만 느껴진다. 다시 돌아올 때 너와 결혼하겠다는 말만 믿고 살아왔던 아내의 입장은 선택이 없는 삶이었다. 의지로 풀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아내는 힘들어한다.

미래를 왔다 갔다 하며 헨리는 새로운 사실들에 괴로워하고 그걸 궁금해 하는 아내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미래를 알고 나면 현재가 힘들다”. 헨리는 미래를 알기 때문에 괴로운 자신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표명한다. 결국 그는 자신이 아내보다 먼저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그 죽음을 피하고자 애썼으나 역시 불가항력임을 알게 된다. 미래를 알고도 피할 수 없는 헨리나 알지 못하므로 이유도 없이 당하고 끌려 다녀야 하는 아내 클레어의 입장은 평범한 세상의 이치를 새삼 느끼게 한다. 인생이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고 설령 알아도 그걸 바꿀 수 없으니 모르는 것만 못하다. 그저 현실의 일분일초를 천년같이 살 수밖에.

영화 속 헨리는 마치 질병에 걸린 것처럼 시간 여행을 하는 특별한 존재로 그려진다. 하지만 영화는 보통 사람의 삶을 은유한 듯 보인다. 인간의 몸은 지금 이곳에 있어도 의식은 항상 여기저기를 왕래한다. 매일 꾸는 꿈에서도 우리는 가본 곳 혹은 가보지 못한 곳을 여행하며 현재 이곳을 떠나 여행한다. 인간은 현재에 만족을 모르며 보이지도 않는 미래를 향해 끝없이 갈구하는 외로운 존재 아닌가. 밖으로 떠돌던 무수한 여행은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게 만든다.

코로나19가 기본적으로 변화시킨 삶과 사랑의 모습은 이렇다. 될 수 있는 한 집에서 지내라 하는 이유가 더불어 사는 사람의 소중한 가치를 좀 더 음미하라는 섭리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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