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회장, 시장에 뿔났다
13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메인기사로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이 상장폐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경영자가 자기 회사의 주식을 사들인 뒤 상장 폐지하는 경영자인수(MBO)를 통해서 말입니다.
손 회장이 시장에 불만이 있다는 건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사실입니다.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그룹이 알리바바, T모바일, ARM 등 글로벌 주요 기업들에 투자하면서 평가이익을 크게 올리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시장의 평가가 낮다는 데에 꾸준히 불만을 가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실제 손 회장은 주주가치를 꾸준히 강조하는데 이는 소프트뱅크그룹이 투자한 회사의 지분가치에서 순부채액을 뺀 금액을 말합니다. 즉, 투자 지분 가치를 알아달라는 호소죠. 현재 소프트뱅크그룹의 주주가치는 1주 당 1만 2973엔인데도 불구하고, 소프트뱅크그룹의 현재 주가는 그의 절반정도인 6385엔(14일 기준)에 불과합니다. 시장은 그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투자 지분 가치는 미실현된 이익이라며 평가절하하고 있는 셈이죠. 특히 나스닥 옵션거래가 알려진 이후 폭락한 주가에 손 회장은 크게 분노했다고 하네요.
그런 탓인지 소프트뱅크그룹이 상장폐지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2015년에도 시장의 평가절하를 이유로 상장폐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 나온 적이 있죠. 그 때는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았던 탓에 없던 얘기로 돌아갔지만 말입니다.
이번엔 진짜? 손 회장이 시장에 준 신호
대표적인 시그널 중 하나가 핵심자산의 매각을 서두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T모바일과 알리바바그룹 주식을 최근 매각한 데 이어, ‘미래를 꿰뚫어보는 수정구슬’이라고 칭하며 애정을 가졌던 ARM의 지분까지 팔았기 때문이죠. 올 들어 이렇게 지분을 팔아치우면서 챙긴 현금은 무려 12조엔 수준으로, 시가총액(13조엔)에 맞먹습니다. 심지어 일각에선 손 회장이 최근 나스닥 옵션 거래에서 거액의 현금을 챙겼을 것이라고도 추측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로는 이미 무서울 정도로 자사주를 사들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소프트뱅크그룹은 올 들어 2조 5000억엔 가량의 자사주를 사들였는데요, 이는 발행된 주식의 4분의 1에 달합니다. 자산을 매각해 손에 넣은 현금으로 차곡차곡 자신의 회사 주식을 사들이고 있었던 셈입니다.
소프트뱅크그룹이 증시서 사라지는 날
소프트뱅크그룹이 상장폐지에 성공할 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 ARM 매각이 알려진 당일 주가가 8.96%나 뛰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죠. 주가가 싸야 싼 값에 주식을 많이 사들일 수 있는데, 주가가 높아지면 높아질 수록 취득할 수 있는 주식의 수는 적어지고 MBO는 멀어지기만 해서죠.
다만 진짜 소프트뱅크그룹이 일본 증시에서 사라진다면 일본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작지 않을 겁니다. 소프트뱅크그룹만큼 거래가 잘 되는 주식이 일본에 그리 많지 않고요, 그만한 스토리를 가진 주식도 찾기 어렵기 때문이죠.
손 회장의 화끈한 베팅에 소프트뱅크그룹은 항상 뉴스가 끊이지 않았고 주가는 이에 반응해 왔습니다. 14일에도 소프트뱅크와 소프트뱅크그룹은 일본 증시의 거래대금 상위 1,4위를 각각 차지했죠. 일본의 시가총액 상위종목들이 대부분 도요타자동차처럼 따분한 종목들인 걸 감안하면, 소프트뱅크그룹은 일본 주식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섹시한 종목’임은 틀림 없습니다. 그래서 소프트뱅크그룹의 상장폐지는 일본 시장의 매력을 낮추는 일이 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나오는 것이죠.
손 회장의 상장폐지 시도가 이번엔 진짜 성공할 지 앞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