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의 문화재 읽기]명성황후 시해 목격한 러 건축가..그는 어떻게 궁궐에 있었나

을미사변 목격자 러시아인 사바틴
고종 요청으로 궁궐에서 당직 근무
"궁궐에서 일본인들 역할 감시"
  • 등록 2020-10-26 오전 7:00:01

    수정 2020-10-26 오전 7:00:01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10월 8일 화요일 오전 5시. 서울의 궁궐은 조선 군인들과 민간복 차림의 일본인 낭인들의 공격으로 파괴됐다.…일본 낭인들은 왕비의 침소를 공격해 왕비와 세명의 궁녀, 내부대신을 살해했다. 이들은 시신을 궁궐밖에 끌고 나와서 불에 태웠다.’

1895년 10월 12일자 ‘뉴욕 헤럴드’가 전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다. 해당 기사는 전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일본은 기사 보도 이전까지 사건과 하등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 심지어 황후는 흥선대원군과의 ‘중세적’ 갈등 과정에서 시해됐다고 변명했다.

기사로 전 세계적 비난을 받게 된 일본은 결국 일본 군인 미우라가 사건에 연루됐음을 시인하고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했다. 이처럼 을미사변의 배후가 밝혀질 수 있었던 것은 이를 목격하고 생생히 알린 러시아인 사바틴 등의 증언 덕분이었다.

사바틴의 초상(사진=따찌아나 심비르체바)
문화재청은 지난 19일부터 덕수궁 중명전에서 특별전 ‘1883 러시아 청년 사바틴, 조선에 오다’를 선보였다. 전시를 통해 을미사변 목격자인 사바틴의 건축가로서 생애와 활동을 조명했다. 전시를 보면 문득 건축가였던 사바틴이 왜 을미사변 당일 궁궐에 있었는지 의문이 생긴다.

사바틴이 기록한 증언에 따르면 그는 당시 고종의 요청으로 경복궁에서 미국인 윌리엄 다이(William Dye) 장군과 당직을 서고 있었다. 군인도 아닌 외국인이 경복궁에서 당직을 서게 된 이유에 대해 이정수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학예연구사는 ‘삼국간섭’ 등 시대적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1895년 4월 23일 일본은 청일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요동 반도를 차지하게 된다. 이를 견제한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외교적 개입으로 결국 일본은 철수하게 된다.

이 같은 삼국간섭으로 러시아의 힘을 확인한 명성황후는 러시아 세력과 손을 잡는다. 일본에게 황후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불안한 조짐을 느낀 고종은 미국인 닌스테드(F. J. H. Nienstead) 대령까지 3명에게 경복궁에서 당직을 서도록 했다. 혹여 무슨 일이 일어날 경우 조선의 입장을 해외에 전달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사바틴은 “우리의 임무는 객관적 증인으로서 일본인들이 궁궐에서 어떻게 명령을 내리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며 “순서에 따라 매 6일 중 4일동안 궁궐 내에서 체류했고, 궁궐에는 항상 두 명의 유럽인이 남아 있었다”고 기록했다.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사바틴의 증언서(사진=제정 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이들은 고종의 신뢰를 받았던 것으로 관측된다. 이 학예연구사는 “당시 조선에는 많은 외국인이 있었지만 고종이 자신의 호위를 아무에게나 맡기진 않았을 것”이라며 “사바틴은 특히 1888년 관문각을 지으면서 쌓은 고종과의 신뢰가 이어졌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바틴은 이후 일본으로부터 생명의 위협과 생활고에 시달려 한동안 조선을 떠났다. 일본의 암살위협과 더불어 그는 조선에서 임시직도 잃었다. 러시아 공사관은 그가 더 이상 조선에서 어떤 직무도 하기 힘들다는 통보까지 했다. 결국 4년여간 조선을 떠난 사바틴은 1899년 조선으로 돌아와 1904년 까지 여러 건축 및 토목에 관여하고 떠났다.

사바틴이 그린 경복궁 내 시해장소 지도(사진=제정 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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