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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작가 문준용(38)을 만났다. 무리에 섞여 있지 않은 그를 단독으로 만난 건 두 번째. 3년 반 만이다. 첫 만남은 2017년 6월 초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작업실에서였다. 당시는 아버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던 때다. 그즈음에 문 작가는 서울 종로구 금호미술관에서 단체전을 열고 있었고, 함께 참여한 다른 작가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언론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절대 유쾌한 관심만은 아니었다. 그는 대선 때 불거진 ‘채용특혜’ 논란에 시달리고 있었다(본지 2017년 6월 5일자 ‘문준용 “대통령 아들? 하루살이 걱정하는 예술가일 뿐”’ 참조).
두 번째 만남은 지난 23일에 있었다. 시간만 흘렀을 뿐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여전히 그는 대통령의 아들이란 유명세를 치르고 있었고, 서울 중구 금산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었으며, ‘코로나19 피해 예술인 지원금’ 논란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니다. 변한 건 분명히 있다. 상황은 더 험악해졌고, 그는 예전보다 지쳐 보였다.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온 그와 관련한 얘기들과는 다른 말을 직접 들으려 한 것이 그에게 만남을 청한 목적이다. 정치인이나 보수여론과 싸우는 투사가 아닌 ‘예술가 문준용’이 하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인터뷰는 이데일리 본사와 금산갤러리로, 장소를 옮겨가며 2시간 반여 동안 진행했다. 3회에 걸쳐 게재한다.
△증강현실에서 가상인물과 실제인물이 마주치는 ‘시선’
오후 4시 30분. 원래 인터뷰 장소이던 금산갤러리로 이동하기로 했다. ‘개인전 전시작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 애초의 계획이었으니까. 차 안에서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부모님과 통화는 자주 하느냐고. 문 작가는 “그러게 하진 못한다”고 했다. “서로 뉴스를 통해서 안부를 확인한다”고. 그러곤 혼잣말처럼 집안분위기를 탓했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들이 아닌가.” 연이어 (대통령의 아들로) 가장 불편한 게 뭐냐고 물었더니, 허를 찌르는 답변이 돌아왔다. “전시장에 들어가지 못할 때”라고 했다. “시위대까지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빛을 비추면 안쪽에 그림자가 생긴다. 센서가 달려 있어 그림자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거다. 그 위치에 맞춰 영상은 위에서 쏘게 돼 있는데, 실제 그림자와는 다른 그림자를 내보인다. 이 전등은 마우스와 키보드 같은 도구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일부기도 하다. 여기서 바로 ‘인터랙션’이 이뤄지는데, 모든 그림자가 관람객을 쳐다보게 만들었다.”
실제 그랬다. 그림자 인물들이 걷는 모습은 제각각인데 하나같이 내 쪽을 향해 시선을 떼지 않았다. ‘시선 너머, 어딘가의 사이’란 전시명이 이제야 드러난 거다. “나도 이들을 보고 저들도 나를 본다. 가상공간에서 서로 만나는 거다. 증강현실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고. 그 안에선 가상인물과 실제인물이 이렇게 시선을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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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보고 지원금 받아도 될지 판단해줬으면”
작품설명을 듣다 보니 조금 전 이데일리 본사 회의실에서 일어서기 직전 나눴던 얘기가 떠올랐다. “인터랙션 작품은 사람들이 사용할 때 성공 여부가 보인다. 표정이나 행동으로 관람객들이 얼마나 즐거워하는가를 알 수 있는 거다. 사용성이 얼마나 높은지, 사용할 때 편한지 불편한지, 학습기간이 길지 않고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가 궁극적인 평가가 될 수 있다.”
그랬다. 다른 게 아니라 이 작품을 문 작가는 모두에게 보이고 싶어 했다. 그의 안타까움은 거기서 출발한 셈이다. “바라는 게 있다면, 작품을 봐주는 거다. 아니라면 최소한 내 이력이라도 봐줬으면 한다. 보고 난다면 개인전을 해도 될 사람인지 지원금을 받아도 될 사람인지 알 수 있을 텐데. 그게 참 답답하다.”
3년 반 전 문 작가를 문래동 작업실에서 만났을 때, 그는 “팔리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과제”라고 했더랬다. 미디어아트 작품이 팔릴 수 있다는 건 관람객을 충실히 배려했다는 거니까, 인터랙션에 집중했다는 거니까. 하지만 어쩌겠나. 아직까진 말이다. 문 작가가 그토록 중시하는 인터랙션이 가상공간에서만 이뤄진다는 게 씁쓸할 뿐이다. 그가 작품명으로 삼은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가 섞이는, 안이 곧 밖이 되고 밖이 곧 안이 되는 그런 얘기는 증강현실에서나 가능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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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림자라고 했다. 빛이 없다면 그림자가, 그림자가 없다면 빛이 의심을 받는다. 결국 정반대에 섰지만 결코 떨어질 수가 없는 관계란 소리다. 문 작가와 곡절 많은 인터뷰를 마치고 나온 전시장 밖은 여전히 소란했다. 과연 빛인지 그림자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