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상담교사…성폭력 가해자 데리고 피해학생 찾아갔다

친분 있던 가해학생 측에 "내 방문시간 맞춰 학교로 와라"
학교 속여 피해학생 담임 면담…가해학생, 당시 기소 상태
담임이 접촉 막아…'2차 가해' 해임되자 소송냈지만 패소
  • 등록 2023-06-10 오전 11:00:00

    수정 2023-06-10 오후 4:15:56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성폭력 가해자 측의 부탁을 받고 합의를 주선하겠다며 가해자를 데리고 피해학생이 다니는 학교를 찾아간 전문상담교사가 해임됐다. 이 교사는 해임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10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대구교육청 소속 상담교사이자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이었던 남성 A씨는 평소 개인적 친분이 있던 여성의 아들인 학생 B군을 상담했다. B군은 친구들과 함께 C양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러 피해학생에 대한 접근금지 처분을 받고, 2021년 2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겨졌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A씨는 B군과 C양의 합의를 주선하겠다며 상담교사 신분을 앞세워 C양이 다니는 학교를 방문하기로 했다. A씨는 C양이 다니는 D학교 측에 “학생 상담과 관련해 학교를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방문을 허락받았다.

그리고 실제 2021년 3월 말 D학교를 방문했다. A씨는 성폭력 가해자인 B군과 B군 모친에게 자신의 방문 시간에 맞춰 D학교로 찾아오도록 했다.

피해학생 측이 알게 되자, 오히려 담임교사에 항의

A씨는 D학교 관계자와 만나 ‘이 학교 학생과 관련해 담임교사와의 상담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말을 건넸다. A씨가 지목한 담임교사는 바로 C양의 담임교사였다. 결국 C양 담임교사는 학교 측의 지시에 따라 A씨를 만나러 왔다.

C양 담임교사를 만난 A씨는 자신의 ‘교육청 상담실장’이라고 소개한 후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가해학생 중 한 명과 친분이 있다. 가해학생이 자살도 생각하고 위험해 걱정돼 왔다. 지금 학교 앞에 가해학생과 어머니가 와 계신다. 피해학생이 원하면 만나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놀란 담임교사는 A씨 요구를 일축하며 “가해학생 측과 함께 돌아가라”고 말했다. 담임교사의 대처로 C양은 가해학생 측과 접촉하지 않을 수 있었다. 담임교사는 즉각 C양 부모에게 A씨 방문과 관련한 내용을 알렸다.

충격을 받은 C양 부모는 곧장 A씨에게 전화해 항의한 후, A씨를 경찰에 신고하고 교육청에도 민원을 제기했다. A씨의 비위 사실은 이후 몇몇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A씨는 반성하기는커녕 기자에게 보도를 비난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담임교사에게 알린 이유와 자신의 정보 전달 여부를 캐물었다.

대구교육청은 2021년 5월 A씨에 대한 징계의결을 요구한 후, 같은 해 7월 “A씨의 행위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과 학교내 성폭력 사안처리 대응 매뉴얼에서 규정하고 있는 2차 가해행위에 해당한다. 위기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배치된 전문상담교사 및 학폭위원으로서 성실의무와 품위유지의무를 위배했다”며 해임처분을 했다.

A씨는 이에 불복해 소청심사를 청구했으나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같은 해 10월 A씨 청구를 기각하는 재결을 했다.

“가해학생 자살 막으려 한 행동…비위 아닌 적극행정” 궤변

A씨는 소청심사가 기각되자 곧바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법정에서 자신의 비위행위에 대해 “적극행정의 일환이었다”는 황당한 주장을 폈다. A씨는 “가해학생이 처한 자살사고 위험을 방지하고 피해학생의 실질적 피해회복에 도움이 되고자 분쟁조정을 위해 교사로서 최선을 다한 것”이라며 “2차 피해를 야기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심은 “A씨 태도는 가해학생 입장을 옹호하고 화해를 종용하는 것으로써 피해학생과 그 가족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야기하는 가해행위에 해당한다. 2차 가해행위에 해당하고 그 과정에서 A씨는 공무원 행동강령에 위배되는 행위를 했다”며 A씨 주장을 일축했다.

1심 재판부는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과 준법성이 요구되는 교원 지위에 있음에도 성범죄 피해학생의 고통과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2차 피해를 야기했다. 우리사회에서 성범죄 2차 피해를 근절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과도한 징계도 아니다”며 “사건 직후 행동을 보면 진심으로 반성하는 사람이 취했을 행동으로 보기도 어렵다”고 질타했다.

A씨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는 항소심에서 “D학교에 찾아가 담임교사에게 ‘피해학생이 원한다면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을 만나서 사과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이 전부다. 2차 피해를 가한 것으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대구고법 행정1부(김태현 원호신 정성욱 부장판사)는 “A씨의 행위는 성폭력 범행의 사건처리 및 회복 과정에서 피해학생에게 정신적 피해, 즉 2차 피해를 가한 행위에 해당한다”며 “담임교사의 거절로 직접 접촉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피해학생이 받은 2차 피해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판결에 불복해 상고해 대법원에서 심리가 진행 중이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돌발 상황
  • 이조의 만남
  • 2억 괴물
  • 아빠 최고!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