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글리시를 문화유산으로 허하라"

수많은 세계언어가 교류한 흔적
배척보다 한국어 성분으로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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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글리시 찬가
신견식ㅣ340쪽ㅣ뿌리와이파리
  • 등록 2016-10-12 오전 6:08:00

    수정 2016-10-12 오전 6:08:00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요즘 한국사회에서 흔히 접하는 말 가운데 ‘금수저’와 ‘흙수저’가 있다. 부모가 부유해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을 지칭하는 금수저는 부모의 도움 없이 맨손으로 사회에 나와야 하는 이들을 비유하는 흙수저와 함께 ‘빈익빈 부익부’를 상징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금은 비싸기도 하거니와 금속 특성상 무르기도 해 식기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은수저는 있어도 금수저는 없다. 이는 금수저란 단어 자체가 한국어에는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금수저가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단어로 부상했을까.

스페인어와 언어학을 전공한 저자는 15개 언어를 해독할 수 있어 번역계에선 이른바 ‘언어괴물’로 통한다. 사전 없이 영어를 비롯해 스페인어·중국어·일본어·라틴어·그리스어·프랑스어 등을 읽는다. 여기에 중세 영어·프랑스어까지 커버하며 번역가를 돕는 번역가로 불린다. 그런 저자가 여태껏 ‘잘못된 영어’, 일제 잔재 정도로만 취급받았던 ‘콩글리시’를 한국의 근현대사뿐 아니라 수많은 세계언어가 교류한 흔적이 담긴 문화유산으로 격을 높인다.

저자는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20세기 이후 영어가 모든 언어에 크든 작든 영향을 미쳤고, 따라서 영어와 결합·파생해 일상어로 쓰는 콩글리시를 일방적으로 배척하기보다 한국어를 이루는 성분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금수저는 영어에서 부잣집 태생을 뜻하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to be 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란 관용구에서 연유했다. 은보다 금이 비싸기 때문에 은수저보다 금수저가 상징적으로 쓰이게 됐다고 풀이한다.

또한 ‘추리닝’은 영어의 ‘트레이닝’(training)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러나 운동연습 등을 뜻하는 ‘트레이닝’과 전혀 다른 의미다. 운동보다는 운동복의 개념으로 평상시 후줄근하게 또는 추레하게 입는 옷을 통용한다. 굳이 정확한 영어식 표현을 하자면 ‘트레이닝 슈트’(training suit)가 맞다. 하지만 추리닝은 루마니아어에서도 운동복이란 뜻으로 쓴다고 알려준다.

책은 외래어와 콩글리시의 근원을 파고 들어가는 저자의 지적 여정을 수십개의 언어를 통해 종횡무진하며 흥미롭게 펼쳐낸다. 언어란 문화와 문화가 만나 변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다채롭게 발전할 수 있다는 주제의식을 살려 제목에 ‘찬가’를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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