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강흠 연세대 경영대 교수] 슈퍼히어로 배트맨 시리즈에서 브루스 웨인은 집안 살림 걱정 없이 악당들과 싸워 고담시티를 지켜냈다. 충직한 집사 알프레드가 살림을 맡았기 때문이다. 알프레드는 브루스가 사망하면 유산상속자 1순위임에도 불구하고 브루스의 건강을 챙기며 저택과 주식 등 재산을 잘 관리해 주었다. 알프레드와 같은 집사가 있다면 기꺼이 재산을 맡기겠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보인 기관투자자의 소극적인 태도가 지적됐다. 이에 영국은 기관투자자들도 집사(steward)처럼 고객 재산을 책임감을 갖고 관리할 것을 권고하는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를 2010년 도입했다. 즉 주식 투자가 주목적인 기관투자자는 수탁자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소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넘어서 기업의 핵심 경영사항에 관여해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개선하도록 노력하며 이를 수탁자에게 투명하게 보고하라는 주문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현재 10여개 국가에서 도입해 운용 중인데 일반적으로 기관투자자의 자율에 맡기는 가이드라인으로 강제성은 없다. 다만 원칙을 준수하거나 그러지 못하면 그 사유를 설명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6년 12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기본 7개 원칙을 공포하면서 시행에 들어갔다. 그 중 핵심은 의결권 행사와 기업 경영 참여다.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는 2003년에 허용됐는데 2008년 2월에는 집합투자업자의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고 2013년에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에 대한 충실의무가 명시돼 찬반 사유까지 공시하도록 강화됐다. 하지만 국내 기관투자자는 대기업이나 금융지주사 계열이 많은데다 피투자기업과 거래관계에 있는 경우가 허다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국민연금이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 채택에 불을 댕기면 기관투자자들이 한 목소리를 낼 여지가 많다. 그 동안 변죽만 울리던 기관투자자들이 투자가치를 훼손하는 경영활동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네트워크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신(新)정부의 재벌 개혁의지를 감안하면 스튜어드십 코드가 추구하는 가치에 재계 스스로 코드를 맞춰 나갈 필요가 있다. 가볍게 생각해 귀신을 피하려다 자칫하면 호랑이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스튜어드십 코드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기업 지배구조에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업 가치 향상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한다는 보장도 없다. 따라서 시행 과정에서의 과도한 경영권 간섭의 폐해를 막기 위해 독립성과 객관성 그리고 피투자기업에 대한 심도 깊은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 기관투자자는 과도한 업무와 책임을 고려해 경영 관여의 범위를 정하고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해 의결권 전문기관을 활용해야 한다. 의결권 전문기관도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므로 신뢰 쌓기에 전념해야 한다. 결국 스튜어드십 코드의 성공적인 도입을 위해서는 이해관계자 모두가 코드를 맞추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연세대 법학과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박사, 전 한국재무학회 회장(2014), 전 기금운용평가단장(2009~2011, 2016),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1991~현재) 현 연세대학교 미래교육원장(2017~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