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냉장고 쓰면 식구죠"…핀란드엔 '이상한 가족'이 없다

[인구기획 핀란드편]1인가구 비중 44% 달해
정책 기본값은 '개인'…냉장고 같이 쓰는 누구나 가족
"여성 사회진출 돕고 다양한 가족 형태 존중해야"
  • 등록 2020-02-07 오전 5:00:00

    수정 2020-02-07 오전 5:00:00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헬싱키(핀란드)=이데일리 조해영 기자] 많은 한국인들은 가족이라고 했을 때 결혼한 부부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미혼 자녀로 이뤄진 3~4인 가족을 떠올린다. 가족에 대한 고정 관념이다.

핀란드엔 정상가족 개념이 없다. 핀란드인들은 ‘냉장고를 같이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혈연이나 법적인 구속력은 중요하지 않다. 정부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특정한 형태의 가족을 염두에 두는 대신 개인을 기본 단위로 한다. 1인가구, 동거가구, 미혼모 등 우리와 달리 정책 사각지대가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다.

헤이키 힐라모(Heikki Hiilamo) 헬싱키대 사회학과 교수는 “핀란드엔 냉장고를 같이 쓰는 사람은 가족이라고 보는 ‘냉장고 원칙(refrigerator principle)이 있다”며 “개인에 맞춰서 혜택을 줘야 개인이 이를 바탕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에 초점 맞춘 핀란드 인구정책

최근 한국에선 1인가구 급증이 사회 현상이자 문제로 떠올랐다. 한국뿐 아니라 대부분 선진국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1인가구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핀란드는 1인가구 비중이 높은 나라 중 하나다. 핀란드 통계청에 따르면 핀란드의 1인가구 비중은 지난 2018년 기준 44.0%에 달했다.

같은 해 한국의 1인가구 비중은 29.3%였다. 지난해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한국의 1인가구 비중은 2047년 37.3%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선 최근 1인가구가 사회적으로 주목받으면서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4인가족에만 초점을 맞춘 정책을 1인가구 증가세를 반영해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책의 기본 틀을 가족이 아닌 개인에 두는 핀란드의 인구정책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북유럽의 살인적인 물가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주택수당(housing allowance)이 대표적이다. 핀란드 정부는 집세를 충당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일반 주택수당, 연금수급자 주택수당, 학생주거보조금 등을 지급한다. 한 가구당 1년 평균 4000유로(520만원) 정도를 주택수당으로 받는다.

켈라(KELA·핀란드 사회보험관리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수당 혜택을 받은 가구는 전체의 13.9%인 37만6529가구였다. 1인가구 가운데선 21.4%가 주택수당을 받는다. 주택수당을 받는 전체 가구 중 1인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68.7%로 절반을 훌쩍 넘는다. 비교적 소득이 낮고 취약계층으로 내몰리기 쉬운 1인가구에게 주택수당은 중요한 버팀목이다.

반면 한국에서 주거급여 혜택을 받는 가구는 103만 가구로 전체 가구(1997만9188가구·2018년)의 5.2%에 불과하다. 특히 30세 미만 1인가구는 부모와 같은 가구로 간주한다. 이들이 주거 지원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주거급여는 개인이 아니라 가구 단위로 지원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한국 사회에선 여전히 부정적 편견이 남아 있는 동거 역시 핀란드에선 자연스럽다. 핀란드의 동거가구는 지난 2018년 기준 34만2793가구다. 특히 이 가운데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고도 아이를 낳아 키우는 동거가구가 35.8%(12만2614가구)나 된다.

티모 카우피넨(Timo Kauppinen) 핀란드 보건복지연구소(THL) 리서치 매니저는 “동거하는 사람들이 법적으로 부부인 것은 아니지만 정부 정책은 그런 것을 따지지 않는다”며 “핀란드 정부는 ‘그들이 결혼했는지’가 아니라 ‘그 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를 본다”고 말했다. 냉장고 원칙처럼 법적인 관계나 혈연관계와 상관없이 실제로 함께 산다면 그에 맞는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핀란드 헬싱키대 헤이키 힐라모(Heikki Hiilamo) 사회학과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조해영 기자)
다양성이 해법…“가족 개념 넓혀 가야”

핀란드에도 고민은 있다. 최근 핀란드의 합계출산율은 감소 추세다. 2000년대 초반까지 1.7~1.8명 수준을 유지했지만 지난 2018년 역대 최저인 1.41명으로 떨어졌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젊은 층에서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힐라모 교수는 “대졸자 60% 이상이 여성”이라며 “여성이 결혼 상대를 찾기 어려워지면서 출산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핀란드 정부는 여성이 육아 걱정 없이 사회생활을 하도록 정부가 뒷받침하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카우피넨 매니저는 “출산율이 낮아진 건 최근의 일”이라며 “핀란드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한 나라인 만큼 보육 체계(daycare system)를 좀 더 확실하게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 천국 북유럽의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다. 최근 한국재정학회 ‘재정학연구’에 발표된 ‘OECD 국가들의 합계출산율’ 보고서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도 공보육시스템 확충 등과 같이 여성의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정책이 출산율을 올리는 데 효과적임을 입증했다.

보고서는 “보육서비스가 동유럽과 아시아 국가에서 출산율을 높인 것으로 나타난다”며 “출산율 제고를 위해선 청년층의 경제적 여건을 개선하고 여성의 경제활동과 근로시간 유연화를 지원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분석했다.

장기적으론 핀란드처럼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사회 분위기 변화가 필요하다. 힐라모 교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꾸리고 살아가는 이들을 사회가 받아들이는 것은 중요한 현대화 과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카우피넨 매니저 역시 “여전히 핀란드에서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가족이라는 인식이 일부 남아 있다”며 “재혼 가정, 동성 커플 등 여러 가지 가족 형태를 사회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핀란드 보건복지연구소(THL) 티모 카우피넨(Timo Kauppinen) 사회정책 분야 리서치 매니저(research manager)가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조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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