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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관 속여 특혜채용 ‘유죄’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 측으로부터 채용청탁을 받고 부정하게 뽑은 혐의로 기소된 박철규 전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은 올해 2월 징역 10월이 확정됐다. 그는 2013년 6월 하반기 신입직원 채용과정에서 서류전형과 인·적성 검사 점수를 조작해 최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 인턴직원이 합격할 수 있도록 해준 혐의(업무방해)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법원 2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박 전 이사장 등은 하급자에게 지시해 청탁대상자의 서류전형 점수를 높여 본래 불합격될 대상자들을 합격시켜 위계(속임수)로써 그 사실을 모르는 면접위원들의 공정한 면접심사 업무를 방해했다”는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
형법상 업무방해(314조)죄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또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장 지시로 점수 고치고 지원자격 변경 ‘무죄’
지난 1999년 허신행 당시 서울시 농수산물공사 사장은 김영진 당시 민주당 의원의 청탁을 받아 실무자들에게 점수조작과 지원자격 변경 등을 지시해 한 응시자를 합격시켰다.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그는 1심과 2심에 이어 2007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확정받았다.
당시 대법원(주심 김황식)은 “신규직원 채용권한을 갖는 지방공사 사장이 시험업무 담당자에게 지시해 상호 공모 내지 양해 하에 시험성적조작 등 부정행위를 한 경우 법인인 공사에게 신규직원 채용업무와 관련해 오인·착각 또는 부지를 일으킨 게 아니다”며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사장이 특정인을 채용하라고 지시하고 부하직원이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채용절차를 변경하는 등 조직적인 채용비리가 벌어져도 그 과정에서 위계와 위력이 있어야 현행법상 처벌이 가능하다. 업무방해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상급자 등이 속임수와 압력을 동원해 채용담당자의 의사에 반한 업무처리를 강요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장이 부정청탁을 지시할 때 실무자에게 “누구 좀 잘 봐줘” 정도의 말을 하는 것은 위력이 수반됐다고 보기 어렵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위계는 채용비리에서 속임수를 쓰거나 허위사실 유포 등의 행위가 나타나지 않으면 성립하기 어렵다”며 “위력의 경우 경영자가 인사 실무자를 협박하는 수준이 되야 하는데, 이런 식의 채용비리는 드물다”고 설명했다.
“잘못된 관행만으론 채용비리 처벌 어려워”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채용비리 수준을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도 있다. 사기업 채용에 대해선 폭넓게 자율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서울소재 법원의 한 판사는 “채용형태는 회사가 정하는 것인데 관행적으로 (특정형태 채용이) 이뤄져왔다면 그 관행이 잘못됐다는 이유만으로 채용비리이고 업무를 방해한 불법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유지원 법무법인 LKB앤파트너스 변호사는 “어떤 인원을 채용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채용 시스템을 조정하게 되면 업무방해죄 성립이 어렵다”며 “다만 특정인 점수조작 지시 등의 채용비리는 업무방해죄 적용이 그다지 어려워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유 변호사는 “채용비리에서 업무방해죄는 검찰이 업무방해 특정을 얼마나 증명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