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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전쟁 상흔 안은 낙동강, 세월과 함께 유유히 흐르다

경북 칠곡 왜관읍
남북 치열한 전투벌인 현장 '자고산'
한국전쟁 아픈 기억 품은 '호국의 다리'
왜관터널, 애국동산, 평화기념관 등
  • 등록 2020-09-25 오전 5:55:00

    수정 2020-09-25 오전 5:55:00

자고산 정상에서 바라본 경북 칠곡. 자고산 아래 펼쳐진 약목평야를 낙동강이 유려하게 흐르고 있다.


[왜관=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은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 중 하나였다. 전쟁을 도발한 북한군은 거침없이 남쪽으로 밀고 내려왔다. 남과 북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처절한 혈투를 벌였다. 55일간의 이 전투로 연합군과 인민군 수만명이 사망했을 정도로 왜관은 전략적 요충지였다. 과거에는 낙동강 수운의 항구였고, 지금은 경부선 철도와 경부고속도로, 그리고 여러개의 국도와 지방도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가 바로 왜관이다. 왜관읍을 감싸고 있는 자고산에 오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높이 303m의 작은 산이지만, 정상에 오르면 드넓게 펼쳐진 약목평야와 그 사이를 에둘러 흐르는 낙동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자고산 정상에서 바라본 낙동강, 약목평야와 경부선 왜관철교


낙동강과 약목평야가 그림처럼 펼쳐진 자고산

옛날 자고라는 새가 살았다고 해서 자고산이라 불리는 이 산은 정상을 오르는 코스가 총 5개다. 이중 왜관읍에서 출발하는 코스는 흥국사와 우방아파트, 국조전 등이다. 1~1.5㎞의 짧은 등산로로, 1시간이면 넉넉히 오를 수 있다.

흥국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른다. 등산로 입구는 만수공원. 약수터와 운동 시설, 작은 야생화 단지가 있는 공원이다. 약수터 왼쪽으로 난 등산로로 방향을 잡는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산행이다. 등산로 초입은 길이 좁고, 숲이 울창하다. 이 길을 따라 400m 정도 가면 이정표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1.5km 정도다. 15분 정도 더 오르면 공터가 나타난다. 여기서 오른쪽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헬기착륙장이고, 왼쪽 등산로를 따라가면 정상이다.

작오산 정상에 세운 한미전몰장병추모비


산허리에서 내려다본 왜관과 낙동강은 아득하고 광활하다. 눈을 돌리면 산과 산이 끝나는 곳에 반듯한 평야가, 그 평야를 가로지르고 있는 낙동강이, 평야가 끝나는 곳에는 다시 산이 이어진다. 산자락에 묻힌 빨갛고 파란 집들은 장난감처럼 자그맣다. 이곳부터 정상까지는 임시산책로를 따라 올라야 한다. 정상에 전망대 공사가 한창이어서, 기존 산책로는 임도로 활용하고 있어서다.

정상에 거의 다다를 무렵에는 상당히 가파른 구간이 나타난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뚝뚝 떨어지고,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즈음 탁 트인 공터가 나타난다. 공터 가운데 반쯤 지은 전망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숨을 돌리고, 정상에 서면 영남의 젖줄로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을 비롯해 자유와 평화를 지켜낸 호국의 다리, 칠곡보는 물론 관호산성, 약목평야 등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올라오며 흘린 땀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정상의 빼어난 전망과 함께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바로 한·미 전몰장병 추모비다. 전망대가 있는 데크 옆에 조그맣게 세워두었다. 사실 자고산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유엔(UN)군과 국군이 북한군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격전지 중의 격전지였다. 미군 포로 42명이 이곳에서 학살되기도 했다. 이 추모비는 이들을 포함해 자고산 전투에서 숨진 미 1기병사단 장병과 국군 장병을 기리기 위해 2010년에 세웠다.

6.25 한국전쟁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호국의다리’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

왜관읍에는 당시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장소가 여럿 있다. 왜관에는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총 3개 있다. 상류에서부터 나열하면, 경부선 열차가 다니는 복선 왜관철교, 차량이 이용하는 왕복 2차선의 왜관교, 그리고 보행자와 자전거 전용인 옛 왜관철교다.

옛 왜관철교는 현재 ‘호국의 다리’로 불린다. 호국의 다리는 일제가 대륙 침탈을 위해 1905년 개통한 경부 간 군용철도의 교량으로 만들었다. 1941년 낙동강 상류에 복선 철교가 만들어지면서 사람과 차가 함께 이용하는 인도교가 됐다. 하지만 다리의 운명은 6.25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크게 바뀌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수십만명의 피란민이 남쪽으로 이동했다. 왜관철교는 당시 김천에서 대구로 이어지는 국도에서 낙동강을 건널 유일한 인도교였다.

연합군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북한군과 격전을 벌였다. 이에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미군은 왜관철교를 폭파해 왜관을 사수했다. 끊어진 다리에 발목 잡힌 북한군은 연합군의 폭격으로 4만명 중 3만명이 사망했다.

일제가 1905넌 경부선 철도 터널로 만든 왜관터널


왜관철교는 그해 10월 긴급 복구해 다시 인도교로서 역할을 했다. 1979년에는 안전을 이유로 철거를 고려하기도 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다리를 보존하기로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1993년 2월, 왜관철교는 기나긴 복구공사 끝에 ‘호국의 다리’로 다시 개통했다.

호국의 다리에서 도로를 건너면 옛 왜관터널로 이어진다. 1905년 경부선 철도로 만들어진 터널이다. 길이 80m의 반원형 터널 입구는 화강석으로, 내부는 붉은 벽돌로 마감했다.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왜관터널 위에는 ‘애국동산’을 조성했다. 칠곡군의 애국지사와 독립운동가를 추모하는 비석과 한국전쟁 때 희생된 순국경찰위령비가 함께 있다. 맨 꼭대기에는 ‘유엔왜관지구승전비’가 세워져있다.

호국의 다리에서 약 2.5km 상류 언덕에는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이 들어섰다. 낙동강방어전투를 재조명하는 추모와 체험, 교육, 여가 기능을 갖춘 시설이다. 중앙 로비에 구멍 난 철모와 55개의 탄피 모형으로 꾸민 장식물이 인상적인 곳이지만, 지금은 전국을 휩쓸고 있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으로 잠시 문을 닫아놓았다.

애국동산


◇여행메모

△가는길=수도권에서 출발하자면 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단 뒤 다시 김천분기점에서 경부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대구, 구미 방면으로 향한다. 이어 왜관 나들목에서 나가면 왜관읍이 있다.

△잠잘곳= 칠곡의 유학산 자락에는 한국산림복지진흥원에서 운영하는 국립 칠곡숲체원이 있다. 휴양림 겸 숙소다. 숲체원에는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칠곡 매원마을에는 고택체험을 할 수 있는 한옥 숙소도 여럿 있다. 풍각댁, 서당, 관수재, 아산재 등이 있다. 왜관읍에는 센트로관광호텔이 최근 새로 생겼다.

칠곡호국평화기념관 앞에 있는 호국평화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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